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
정채봉 지음, 김덕기 그림 / 샘터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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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점에서 약속도 잊은 채, 책 속의 이야기에 빠져든 적이 있다. 약속을 잡을 때에 서로 시간 부담 없이 만나기에 편한 곳은 서점이다. 한동안 서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적이 종종 있었다. 어느 날, 몰입해서 읽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정채봉의 동화였다. 그림과 함께 잘 어우러져서 강하게 다가왔고, 마음 속에 맴도는 이야기였다. 그때의 분위기가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그때 읽은 책의 강렬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정채봉'을 알게 되었고, 이름만으로도 찾아 읽게 되는 작가 중 하나가 되었다.
 
바람에 몸을 씻는 풀잎처럼
파도에 몸을 씻는 모래알처럼
당신의 맑은 눈동자 속에 나를 헹구고 싶다
 
이 책을 펼쳐들면 정채봉의 필체와 함께 볼 수 있는 글이다. 이 책의 띠지에 있는 소개에 의하면 정채봉은 '깊은 울림이 있는 문체로 어른들의 심금을 울리는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용어를 만들어 낸 사람'이다. 적절한 설명이다. 아이들이 읽는 것이 동화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읽기에도 어색함이 없으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채봉의 잠언집이다. 1판 1쇄 발행일은 2004년 1월 9일. 내가 읽은 책은 2판 4쇄 발행본이다. 故 정채봉 님은 2001년 1월, 동화처럼 눈 내리는 날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그 이후에 다른 사람들이 엮은 책이다. 병마가 그를 앗아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더이상 그의 새로운 글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속상하기만 하다.
 
정채봉의 짧은 우화가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있다. 교훈을 따로 짚어주며 일러주는 것보다는 이렇게 여운을 남기고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도 정말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강하게 마음에 와닿고, 어떤 이야기는 약하기도 하다. 강약이 있는 다양한 글을 통해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감정을 그때그때 따로 메모해놓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른 시간에 읽을 때에 지금의 나와 어떻게 생각이 다른지, 어떤 점을 공감하게 되는지 궁금해진다.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많은 책인데, 특히 지금 나에게 가장 와닿은 글은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이다.
"걱정은 결코 두려움을 없애 준 적이 없어.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지."
어미 참새가 아기 참새에게 하는 말이다. '애늙은이'라는 별명을 가진 굴뚝새가 오늘도 굴뚝 위에 앉아서 시름에 젖어 있다.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도 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이상하게도 걱정거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이렇게 책을 읽거나 문득 깨달음을 얻고 생각을 달리하는 수밖에. 걱정을 하는 것은 결코 두려움을 없애 준 적이 없다는 말에 힘을 얻는다.
 
나와 파장이 맞는 글을 보면 힘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공감하게 되는 글도 많고, 깔끔한 구성도 마음에 든다. 바쁜 일상에 작은 휴식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얇은 책이지만 감동만은 크고 강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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