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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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 속박되어 답답한 느낌이 들었을 때, 온전히 내 두 발로 걸어다니는 여행을 꿈꾸었다. 그 당시가 한창 제주 올레길이 새로 만들어지고, 걷기 열풍이 시작되던 즈음이었다. 점점 빠르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버스나 지하철, 자동차를 이용하며 바삐 돌아다니는 생활 속에서 천천히 걷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휴식이었다. 무언가 해야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느긋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내 존재 자체를 일깨우는 시간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이 새로이 책을 냈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이 책을 통해 10년 전 《걷기 예찬》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을 먼저 읽을 기회가 생겼음에도, 이상하게《걷기 예찬》을 먼저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마음 먹으면 그대로 실천하게 되는 법, 결국 나는 이 책을 먼저 집어들었다. 이 책이 2002년에 출간된 것이면 지금처럼 올레길, 둘레길, 마실길 등 걷는 길에 대한 인식도 별로 없던 때였고, 한창 월드컵 분위기에 젖어들었던 기억만 얼핏 난다. 10년 넘게 지나서야 2014년의 내가 드디어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9쪽)

다비드 르 브르통이 쓴 이 책은 걷기를 예찬한다기보다는 걷는다는 것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철학적인 고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미 이 세상을 먼저 살아간 사람들인 루소, 니코스 카잔차키스, 바쇼 등의 걷기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읽어나가다보면 걷는다는 것에 대해서 새롭게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 책은 내 두발을 이용해서 직접 걸어간다는 느낌으로 하나씩 천천히 읽어야 그 맛이 제대로 우러난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소리내서 읽든가 음미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 혹은 운동을 위해 걷자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는 걷기를 지향한다. 당장 걷기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한 박자 쉬면서 걷기에 대해 생각해보고 짐을 꾸리고 싶어지는 책이다. 걷기에 대해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보고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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