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왜 시를 썼어요?"
"심심해서 그랬어. 공부를 하다가 일을 하다가 이렇게 마루에 혼자 앉아 있으면 너무 심심한 거야. (중략) 아무튼 너무 심심하니까 세상이 다 자세히 보인 거야. 자세히 보니까 생각이 일어났어. 그 생각들이 내 마음의 곡식 같아서 버리기가 아까운 거야. 그래서 그냥 글로 옮겨 써봤어. 그랬더니 시가 되었어. 어느 날 내가 시를 쓰고 있어서 나도 놀랬다니까. 정말 심심해서 그랬어." (15쪽)
이 책은 제목부터 나의 시선을 확 끌었다.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라니! 그냥 스쳐지나칠 듯한 일상 속 평범한 시간을 글로 엮어내 의미를 부여하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김용택 시인의 글 속에서 내가 잊고 있던 것을 발견하는 느낌이다. '나도 그런 적 있었어.'라고 생각하거나, 이렇게 표현하니 그 심정이 구체화되어 마음에 와닿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시인이 맛깔스럽게 표현한 것을 보며, 그 문장을 곱씹으며 감탄해본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어떨 때, 나는 내 속을 확 뒤집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고, 어떨 때 이 나라를 확 뒤집어엎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고, 또 어떨 때는 이 지구를 확 뒤집어 빨아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어서 가을볕에 고실고실하게 말리고 싶을 때가 있다. (67쪽)
이 책을 보며 '본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다. '세상의 모든 시작은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김용택 시인은 말한다. 한 그루의 나무를 자세히 보면 주위의 사물도 다시 보게 되고,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그리게 하는 것이 종합이고 통합이고 통섭이고 융합(80쪽)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동안 주위를 대충 흘려 보아가며 지내긴 했어도, 나무 한 그루 제대로 관찰한 적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는 본다고 하지만 제대로 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이 세상에 관계 맺지 않은 것은 없다. 봄바람이 하는 일과 봄비가 하는 일이 다 서로 도와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그린다.'(88쪽) 시인의 눈으로 주변의 기본적인 것부터 둘러보는 시간을 갖는다. 누군가가 짚어줘야 그 의미를 알 듯도 한 평범한 나의 눈으로는 이런 글이 깨달음을 준다. 시를 통해 접할 때에는 그 뜻을 가끔은 곡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떠먹여주듯 설명을 해주는 산문은 그 의미가 더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다.
'지친 내 육신을 발소리로 위로하다'는 마을 앞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며 징검다리의 밤 물소리를 녹음한 경험인데, 집에와서 녹음기를 틀었을 때 그 많은 소리들 속에 자박거리는 자신의 발소리를 듣고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수없이 길을 걸었는데도 내 발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은 내 발소리를 찾는 날이었다. (132쪽) 나 자신의 발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가? 그냥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일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일상의 소소함에 눈길을 멈춰본다.
이 책을 읽으며 시인의 감성을 엿보는 시간을 갖는다. 해 저무는 봄날을 견디지 못했다며, 해가 지면 산들이 부풀어 올라 무섭다고 표현한다. '강변의 봄 풀잎 속에서 푸른 어둠이 기어 나오고'(173쪽) 라는 표현을 보면, 해질녘 그 시간에 누구나 볼 수 있는 풍경이면서도, 시인의 감성이 없다면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보면서 시인 김용택의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에서 시를 읽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힘을 빼고, 거스르지 말며, 작은 움직임을 관찰하여 시를 발견해내는 모습을 본다. 이 책을 보면 일상 속 평범함 속에서 시인의 눈으로 관찰해낸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진심이 담긴 글은 읽는 이의 마음도 움직인다.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을 잔잔하게 하고, 공감하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또한 그 감성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