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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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나에게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뤄놓고 하지 못하는 숙제같은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다는데 나 혼자 공감하지 못하는 듯한 소외감도 느끼게 되었다. 책을 읽다가 중지하게 되는 아쉬움. <상실의 시대>가 그랬고 <1Q84>가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설을 즐겨읽지 않는 나에게 중요한 것은 뒷 이야기에 대한 궁금함이다. 등장 인물의 매력은 둘째 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 소설을 읽다가 멈추게 되었던 것이다.

 

 약간 긴 제목의 이 책은 '순례'라는 단어가 호기심을 주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약간 머뭇거리게 되었다. 그의 에세이는 완전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는데, 소설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궁금한 생각이 든 소설이니 일단 읽어보고 정 안되면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이 책을 읽었고, 앞부분에서 한 차례 멈춰버릴까도 잠깐 고민했지만, 뒤로 갈수록 오히려 흥미진진해져서 멈출 수 없던 소설이었다. 쓰쿠루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7쪽) 다소 우울하게 이 소설은 시작된다. 다자키 쓰쿠루가 왜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씩 그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쓰쿠루의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자키 쓰쿠루에게는 네 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룹을 이루어 친하게 지내던 그 친구들과 대학교 2학년 어느 날, 그 친구들의 일방적인 절교로 이유도 모른 채 그룹에서 추방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쓰쿠루는 그 당시에는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그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며 괴로워했다. 죽음을 생각할만큼 괴로움에 빠져들고, 힘든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여자 친구 사라의 권유에 의해 그 친구들을 다시 찾아보게 된다.

 

아카마쓰 게이

오우미 요시오

시라네 유즈키

구로노 에리

 

화면에 늘어선 네 명의 이름을 온갖 생각과 함께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 그의 주위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시간이 지금 여기에 흐르는 현실의 시간으로 소리도 없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연기가 방 안으로 파고들듯이. 그것은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는 연기였다.

 

(134쪽)

 

 다자키 쓰쿠루는 그 당시의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대화를 나눈다.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에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펼쳐볼 수 있는 아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다. 얽히고 설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 할수록 문제를 더 꼬이게 하고 노력하는 만큼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 문제의 핵심에서 약간 비껴나가 있는 것을 느낄 때, 그제서야 그 문제를 풀어볼 용기가 생긴다. 쓰쿠루의 이야기를 보며 섣불리 묻어둔 어느 순간이 떠오른다. 잊어버린 듯했지만 문득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들이 교차하며, 이 소설은 나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363쪽)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대해 깊이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이 글을 보고 무한대로 공감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작거나 크게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 살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상처를 주고 받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글을 보며 깨달아본다.

 

 살아가면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이 마구 떠오르는 것이 이 소설을 읽으며 얻은 개인적인 깨달음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고 사라지지 않는다. 현실의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타난다. 지금 풀어야하는 숙제라는 느낌으로! 쓰쿠루도 그렇게 16년 만에 옛친구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이 책은 지금 밖에 내리고 있는 소나기 같은 책이다. 지속되는 무더위에 한없는 좌절감을 느꼈다면, 단숨에 무언가 뻥 뚫리는 느낌을 받게 된 소설이다. 시원한 소리를 내는 소나기, 이 비가 지나가면 해가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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