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다소 종교적인 제목을 가진 이 책이 처음부터 눈에 와닿았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소설이고 왕따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읽기를 주저했다. 무겁게만 느껴졌고,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현사회의 어두운 짐을 짊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계속 나의 시선을 잡았고, 결국 나는 이 책이 내미는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렇게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의 시작은 그랬다. 감나무에 목을 매 자살한 동급생 '후지슌'이 유서에 나 '사나다 유'를 절친이라 적었다. 그 유서에는 친구인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왕따시킨 아이들을 저주하고,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미안함을 표현했다. 후지슌의 유서에 등장하는 아이들에게 그 사건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사람의 기억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이나 한 사람에 얽힌 추억이 강물에 떠내려가듯 조금씩 멀어지고 잊힌다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실제로 추억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충분히 멀어졌다고 여겼던 추억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할 만큼 생생하게 다가오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이 파도에 씻기듯 한꺼번에 먼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십자가 284쪽)

 주인공 사나다에게 이 사건은 평생을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일이었다. 이 책에서는 후지슌이 절친이라고 언급했지만 본인은 절친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사나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후지슌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유리'에게도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이 무겁게 드리워진다. 후지슌의 아버지는 유서에 등장한 모든 아이들, 즉 왕따를 시킨 아이들뿐만 아니라 절친이나 짝사랑하는 여학생도, 그 모두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껏 뉴스를 통해 왕따 사건으로 인한 자살 이야기를 여러 번 보았다. 왕따 시킨 학생들은 나쁜 사람들, 왕따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학생은 안타깝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동정어린 시선으로 보았다. 그 이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반의 학생이나 선생님,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을 일이고, 그 상처는 평생을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커다란 흔적이 될텐데, 그 생각을 못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이 책을 보며 '십자가'라는 이 책의 제목이 다시 한 번 무겁게 드리워진다. 누구에게나 평생 마음을 짓누르는 어떤 사건, 기억. 이 책을 보는 시간은 그것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사람을 비난하는 말에 두 가지가 있다고 가르쳐준 사람은 혼다씨였다.

나이프의 말.

십자가의 말.

..........

"나이프의 말에서 가장 아플 때는 찔린 순간이야."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십자가 74~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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