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함박눈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아차, 실수했다! 책장을 넘기며 내 기대와 다른 내용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달달한 연애소설을 기대하고 있었다면 이 책은 너무도 적나라한 현실이기에 당혹감을 느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현실적인 것보다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달달한 소설이 정신 건강에 좋던데, 살짝 걱정이 앞섰다.

 

 그제서야 이 책을 다시 자세히 본다. 분명 다나베 세이코 베스트 연애소설 컬렉션이라고 적혀 있는데......나는 소설을 읽기 전에는 스포일러에 희생되지 않고자 이왕이면 서평이나 책의 정보를 일체 보지 않는다. 서평을 보고 소설을 선택했다가 서평이 더 재미있었던 뼈아픈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정보를 미리 보았다가 흥미가 반감되는 경험을 수차례했다. 아무 정보없이 작품을 접하는 것, 그 점이 나에게 기대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주기도 한다.

 

 이 책은 나에게 일종의 반전같은 재미를 주었다. 처음에 예상했던 달달한 연애소설은 아니어서 당황했고,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어서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금방 질리는 단맛이 아닌 숙성된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마치 서른 넘어가면 느낄 수 있는 나이의 맛이라고나 할까. 처음엔 '이게 뭐지?'라고 당황하다가 어느 순간 푹 빠져들고 마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저자, 현실적인 연애의 굴곡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사랑을 받은 연애소설 9편을 모은 베스트 컬렉션이라고 한다. 이 책에 실린 9편의 단편들은 각각 현실 속에 우러난 아홉 가지의 맛을 보여준다.

 

 그 아홉 가지 이야기 중에서 나를 가장 빠져들게 한 이야기는 '깜짝 우동'이었다. 혼자인 엄마와 나이든 딸이 함께 살면서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인데,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을 들켜버린 듯 깜짝 놀라버린 소설이었다. 그 깜짝 놀란 마음을 얼른 '깜짝 우동'을 떠올리며 덮어버린다. 그래서 깜짝 우동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을 몇 번이고 읽어버렸다. 이 소설의 제목에 집중했다고 해야겠다.

"여기 우동은 '깜짝 우동'으로 유명해요."

남자는 미카코에게 가르치듯 말하고 엽차를 마셨다.

"우와, 엄청 큰 그릇이네 하고 우선 깜짝 놀라죠. 먹어보고 맛있어서 또 깜짝 놀라요. 다 먹으면 바닥이 얕아서 깜짝 놀라죠. 그러고 나면 맨 밑바닥에 '깜짝'이라는 글씨가 보여요."

 

(서른 넘어 함박눈 116쪽 깜짝 우동)

 

 아홉 편의 단편을 보고 나니 다시 띠지의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나의 '서른'을 사랑하기로 했다!" 어쩌면 사랑에 대한 환상이 현실에서의 사랑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인가? 사랑은 달달하게 포장된 초코케익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밥도둑 간장게장 같기도 하고, 씁쓸한 머위쌈같기도 한 것이다. 따뜻한 봄날이 떠오르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겠지만, 눈이 펑펑내리는 겨울날같은 것이 사랑일 수도 있다. 사랑의 다양한 현실 속 모습을 보게 된 소설이다. 현실감이 느껴져 씁쓸하지만, 현실 속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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