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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 고기를 굽기 전, 우리가 꼭 생각해봐야 할 철학적 질문들
최훈 지음 / 사월의책 / 2012년 12월
평점 :
우리 사회에서 채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회식을 해도 주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거나 횟집이라도 가야 한다. 결국 나는 사회 생활을 하며 둘 중 하나는 포기하고 물고기는 먹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종교적인 이유라든지 다른 명백한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누군가 "그럼 식물은 고통을 받지 않겠어?"라는 질문을 하면 그저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채식을 하는 것도 내 취향, 다른 사람들이 육식을 하는 것도 그 사람들의 취향. 그저 그렇게 나 혼자 채식주의를 지향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보다가 우리 사회에서 순수채식만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쓴 글인데 완벽한 채식주의가 불가능한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진보적 채식주의자로 살기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아무리 고기를 먹지 않으려 해도 동물성 식품이나 의약품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먹고 있는 대표적 동물성 식품으로는 약 캡슐이 있다. 캡슐은 젤라틴으로 만드는데, 이 젤라틴은 동물의 가죽ㆍ힘줄ㆍ연골 등에 들어 있는 천연 단백질인 콜라겐으로 만든다. 치즈를 만들 때 우유를 응고시킬 목적으로 넣는 것으로 레닛rennet이라는 효소가 있다. 이 레닛은 송아지의 제4위胃에서 나오는 단백질 분해효소로서 송아지를 도살할 때 부수적으로 얻는 동물성 식품이다. 그래서 우유를 먹는 채식주의자(락토-오보채식주의자) 중에는 레닛을 넣지 않는 방식으로 치즈를 만들기도 한다. 딸기우유의 빨간색 색소도 동물성 염료인 코치닐로 만든다. 코치닐은 연지벌레를 건조한 다음 가루로 만든 것인데, 스타벅스가 딸기크림 프라푸치노의 빨간색을 이것으로 만든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 벌레가 징그러워서, 또는 그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항의한 사람들도 있지만, 엄격한 채식주의자들은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했다. 인도의 맥도날드도 감자튀김을 만들 때 소기름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숨겼다가 인도 사람들의 항의 시위에 부딪힌 적이 있다.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 사람들로서는 소기름으로 튀긴 감자튀김을 모르고 먹은 것이 참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음식에 ‘쇠고기다시다’도 넣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토록 엄격한 채식주의자라 해도 동물성 식품이나 약품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다. 레닛이나 코치닐이 들어간 음식은 그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캡슐로 된 약을 안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中 279쪽)
얼마 전 잇몸이 부어서 치과 치료를 받은 후 캡슐약을 먹었다. 언젠가 씹었던 껌에도 젤라틴이 쓰이고, 여성들의 생리대에도 쓰인다고 한다. 치즈는 또 어떠한가. 레닛이라는 효소가 그렇게 얻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먹었다. 딸기우유의 빨간색 색소도 마찬가지. 외식을 하게 되면 국물을 어떻게 우려냈는지 알 수 없다. 고기를 사용했거나 멸치를 이용했거나 엄밀히 말하면 채식 식단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정말 외식 피하고 회식 피한다고 순수한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못하는 일이다. 정말 완벽한 채식주의는 불가능하다.
이 책을 읽은 목적은 그저 조금 더 논리적인 답변을 하기 위해서였다. 채식을 한다고 하면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거나, 식물도 아픈데 어떻게 먹냐는 사람들에게 좀더 그럴듯한 답변을 하고자 이론적으로 무장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진정한 채식주의자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목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윤리적인 면에서 채식에 관한 이야기다. 윤리는 취향과는 다른 문제이다. 나처럼 그냥 예전부터 안먹었고, 그래서 먹을 생각이 들지 않으며, 앞으로도 안먹을 것이라는 단순한 취향은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쓰기에 민망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저자는 원래부터 채식주의자는 아니었다. 고기를 아주 좋아하던 사람인데 고기를 안먹기로 결심한 이후 일상화된 고민으로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대신 '고민'이 차려졌다. 고기를 먹으면 문제될 것이 없는데 고기를 먹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그 고민이 공감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식탁 변천사에서 시작해서 채식주의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들려준다. 육식은 사람과 환경 모두에게 문제를 야기한다. 아무래도 철학자의 글이어서 그런지 생각지도 못했던 고민과 현실을 줄줄 풀어나갔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저자의 논리에 따라 글을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책을 다 읽게 된다. 건강이나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서 나만의 논리로 소신있게 채식주의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읽어보게 해야겠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서로 공감하며 소신껏 식생활을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