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나의 생각을 짧게 노트에 적어놓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고 내가 읽는 책도 많아지면서 노트필기를 하는 단순 노동은 고된 노동이 되었고, 나는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쉬워지는 것은 아날로그적 감성이라고나 할까. 온라인에서 예전 서평을 찾아보며 그 느낌을 다시 되살리는 것은 좋으나, 책을 읽었을 때 온몸으로 느끼던 감정을 서평을 찾아보는 것만으로 느끼기는 조금 힘들다.
이 책 <카페에서 책 읽기>가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궁금했다. '카툰 서평집이라니! 서평을 그렇게도 남기기도 하는구나! 그것도 정말 괜찮은 방법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서평을 남겼을까 궁금했다. 그 호기심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책을 읽고 느낀점을 기록으로 남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글로 쓰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카툰을 그리며 남기는 방법, 책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본 점을 그림으로 남길 수도 있고, 사진으로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카툰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가끔 다른 사람들의 서평집을 보면서 나와는 동떨어진 독서 세계에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거리감을 느끼곤 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는 나도 읽었던 책들이 많았기에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세상에는 어려운 책도 있고, 쉬운 책도 있고, 긍정적인 책도 있고, 부정적이고 암울한 책도 있는데, 적어도 내가 읽은 책이 반 이상은 담겨있어야 공감대 형성에 좋을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을 보니 이미 읽어본 책은 독서 당시의 느낌을 떠올리며 비교하며 볼 수 있었고, 아직 읽지 않거나 망설이던 책은 읽어보고자 마음을 먹게 되었다. 책을 읽고 싶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서평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장점인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정은진의 <앨리스의 생활 방식>, 요른 릴의 <북극 허풍담>, 캐스린 스토킷의 <헬프>를 희망독서목록에 넣게 된다. 특히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도 포함한다. '나는 <레미제라블>을 딱 1권까지만 알고 있었던거야!'라는 독백에 강력히 공감하면서 말이다.
특히 이 책 속에 나열한 용서받지 못할 책 일곱 가지도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마음에 안들던 점을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맞는 말만 골라서 했다. 공감하게 된다.
1. 개념 없는 분권
600페이지 될까 말까 한 책을 부득불 갈라서 분권하는 것에 분노합니다. 차라리 손에 묵직하게 잡히는 단권이 좋다고요!
2. 넌 어느 쪽 그림 설명이니?
이미지와 설명이 따로 놀아 연결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독서 흐름에 상당한 장해를 받는답니다.
3. 넌 미주일 수밖에 없었던 거니?
31페이지의 주석을 보기 위해 916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결국, 보충설명 부분은 과감히 포기해버렸어요.
4. 표지, 너 습자지로 만들었지?
읽을 때마다 표지가 줄줄 흘러내리는 걸 매번 끌어올려야 하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럼 표지를 벗겨 내고 보라고요?
5. 넌 왜 무려 양장이니?
페이지 수 200쪽도 안되는 얇은 책을 굳이 양장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앙증맞은 문고본은 정녕 만들 수 없었던 건가요? 무조건 양장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6. 넌 왜 두꺼운 양장이면서 책갈피 끈도 없니?
근래에 읽은 만화책 때문에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두꺼운 만화책에 페이지 수도 없고, 세상에 책갈피 끊이 없는거예요. 만화책이라도 속독이 불가능한 저는 당황스러웠어요.
7. 광활한 여백의 미
책의 성격상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책도 있지만, 지나친 여백으로 페이지 수만 잡아 먹는 책은 용서할 수 없어요!
(카페에서 책읽기 107쪽 용서받지 못할 책)
다른 사람의 서평을 보고 싶을 때, 이렇게 카툰으로 보는 것도 새로운 느낌이다. 이 책의 맨뒤에 몰입 독서를 위한 추천 리스트도 있으니 체크하면서 읽어봐야겠다. 책을 읽고 나서 나의 느낌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그때 다시 서평을 찾아보면서 말이다. 유쾌하고 깔끔한 독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