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茶人)의 향기 도반의 시 3
석선혜 지음 / 도반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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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기는 무지 더운 한여름이다.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나는 계절,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범벅이다. 습하고 더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이럴 때에 심각하고 난해한 책을 잡으면 영락없이 생활리듬이 깨진다. 작은 자극도 크게 받아들여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짜증이 쉽게 난다. 이럴 때에는 한 템포 늦추는 것이 삶의 지혜다. 책을 읽어도 글자가 적으며 생각을 할 수 있는 잔잔한 것이 좋고, 가볍고 편안한 책이 좋다. 오랜만에 시를 읽고 싶었다. 차에 관한 시를 쓴 스님. 더운 여름, 내 마음을 가라앉혀 줄 평온함이 있을 거란 기대를 하며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커피에 익숙한 나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오후 서너시쯤 되면 한 잔. 인스턴트 인생이다. 차를 우려 마시는 시간이 좋으면서도 금방 잊게 된다. 익숙하던 인스턴트 커피를 금방 잡아들게 된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더운 날에 냉커피 한 잔 벌컥벌컥 마시는 것보다는 은은하게 차를 우려 마시는 것이 훨씬 건강에 좋다는 것도 안다. 실천이 힘들다. 이럴 때에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쩌면 나에게 그런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에게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차향이 가득한 시간이 되었다.

 

 첫 장에 적힌 소희(평상시의 생각)에서 "젊은 날의 가시 돋힌 눈길과 비판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이제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고 스승님께서 예순 살쯤 되어 책을 편찬하면 후회가 적다고 하신 말씀을 핑계로 부족한 줄 알면서도 첫 시집을 차 얘기로 펴낸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읽어온 다른 책들에 대한 생각도 해보는 시간이었다. 책장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 그 책의 저자들은 지금도 그 책이 뿌듯할까? 아니면 부끄러울까? 책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책을 보는 시기에 따라 평가하는 마음이 달라지는데, 저자의 입장은 어떨지 갑자기 궁금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차'를 소재로 시집이 엮인 것이 좋았다. 천천히 읽으며 시로 표현된 활자를 마음으로 느껴보았다. 차는 지금 현재의 나에게 가끔 부리는 호사같은 것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차를 다시 가까이 하게 되었다. 좋은 계기다. 미지근한 물에 차를 우려 식혀먹는 시간동안 시를 읽으며 차 향기를 맡아보기도 했다. 가끔 이렇게 잊고 지내던 감각을 일깨우는 일이 필요하다. 책은 그렇게 행동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당분간 나의 삶에는 차향이 가득해질 것이다. 책 속의 시를 머릿 속으로만 느낄 것이 아니라, 곱게 다듬은 찻 잎을 우려내어 이른 아침 독다(獨茶)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한 잔은 흰 구름 흘러가는 길목에 천선(天仙)에게 띄워보내고/

또 한 잔은 천개의 손을 내민 목련꽃에게도 건네주고...... 독다(獨茶)2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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