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에 끌렸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맛있는 음식들이 떠오른다. 흔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먹는 것으로 푼다. 커다란 양푼에 갖은 나물과 계란후라이, 그리고 고추장을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넣어 석석 비벼서 크게 한 입 먹는다. 허한 속을 채우며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실연도 마찬가지의 경우라 생각된다. 유행가 가사를 보면 많이 야위었다는 등의 표현이 있지만, 내가 보기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아주 맵게, 눈물이 쏙빠지도록 비빔밥을 해먹거나, 달달한 초콜릿 케익을 먹는 것, 그런 식으로 허한 마음을 달래게 된다. 그래서 제목을 보고 지레 짐작을 했다. 실연이라는 계기로 실연을 당한 사람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어가며 서로 위로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가까워지는 모습이랄까? 일단 나의 예상은 보란듯이 깨며 이 책이 진행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 제목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실연이라는 것과 오전 일곱시에 열리는 조찬모임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오전 일곱시의 조찬모임은 CEO라든가 활동적인 사람들의 몫이니 말이다. 흔히들 생각하는대로 실연을 당한 사람들은 폐인처럼 지낼 것이고, 밤을 술로 지새우거나, 멍하니 시간을 보낼텐데 오전 일곱시의 조찬모임에 나갈 자가 누가 있을까?

 

 소설을 보며 현실성 제로인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접할 때 뛰어난 상상력에 눈길이 가기도 한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설을 읽으며 우중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뜬금없는 상상력, 실연이라는 엄청나게 우울한 상황에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담담하게 진행되는 필체, 이상하게도 매혹된다. 사강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지훈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미도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현정의 이야기가 궁금해서...계속 읽게 된다. 은근히 공감하며 매료되는 소설이었다. 너무 슬프거나 힘든 감정에 빠지지 않고, 덤덤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이 책의 장점이었다. 그러면서도 공감하기 좋은 이야기들 속에서 나의 현실을 본다. 같은 세대를 살아가며 같은 것을 보아도 글의 소재가 되고, 적절히 버무려 멋진 표현을 표출해내는 것이 부럽다. 책을 보며 새롭게 정립하는 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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