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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인문학 - 인문학과 싸우는 인문학
최진석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6월
평점 :
불온한 인문학은 불편하다. 현실에 날세우고 싸움을 거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인문학과 싸운단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온성과 전복성의 날이 예리하게 서 있는 인문학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인문학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동안 어쩌면 내가 본 ‘인문학’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럴 듯하게 포장된 소비를 위한 인문학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의 모든 것을 엎어놓고 기본부터 ‘사유’하는 것은 잔잔한 강의 바닥부터 뒤엎어버리는 혼란을 안겨준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내부에서 불편함이 소용돌이쳤다.
이 책을 읽으며 먼저 ‘불온하다’라는 의미에 대해 기본적으로 생각해봐야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단어를 썼는지, 왜 지금 시점에서 그런 인문학이 필요한 건지, 알아야했다.
이제 행복과 희망의 인문학, 화해와 위로의 인문학을 넘어서 불편하고 낯선 反 인문학을 말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반인문학, 또는 인문학에 저항하는 인문학,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불편함과 낯섦을 창출하는 힘이며, 그 힘을 우리는 ‘불온하다’고 부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생산해야 할 인문학의 존재 양태, ‘어떤’ 인문학이 필요한가에 대한 응답은 바로 순응하지 않는 인문학, 즉 ‘불온한 인문학’에서 찾아져야 한다. (83p)
불온한 인문학은 세상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행동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불온한 인문학이다.
불온한 인문학이란 지금까지 인문학에서 부여되었던 동일성의 서사, 그 통념의 임무를 거부하고 내던질 때 시작된다. 국가와 너는 같지 않다고 신랄하게 지적하는 것, 민족의 영광과 네 개인의 행복은 별개의 문제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것, 휴머니즘을 떠벌리며 자행한 학살의 현장을 상기시키거나 삶의 주체로 우뚝 서서 만족해하는 자신에게 꼭두각시 인형이 비친 거울을 보여주는 것, 안온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배면에 ‘우리’로부터 배제된 이웃이 있음을 폭로하는 것, 인문학은 한 번도 순수하게 존재한 적이 없음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정체성과 동일성의 서사를 거절하는 인문학은 불온하다. 통념적인 삶의 관성에 낯설고 불쾌한 소음을 일으키며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88p)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G20정상회의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려넣어 검찰에 의해 징역 10개월을 구형받은 그래피티 작가의 글이었다. 인터넷 뉴스로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일이지만 더 이상 알아보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이렇게 전후사정을 읽고 보니 우리나라의 현실이 더욱 암담하고, 불온한 인문학이 나아갈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불온한 인문학’이 일반 대중인 나에게 제대로 전해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는 그들의 의견에 공감하지만, 글에서 적대적인 느낌이 들어 다가가기 두려운 느낌이다. 대중을 내치지 말고 보듬어 함께 가는 덜 까칠한 인문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느낌만 빼면 불온한 인문학은 지금 시점에서 인문학에 필요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