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역사 기행

제주역사기행
이영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4월

제주도의 자연 풍경에 반해서 이곳으로 무작정 내려온 지 
4개월 남짓,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솔직히 나는 제주도의 ‘역사’라는 것에 눈 막고 귀막으며 지냈다.
특히 4.3사건 이야기만 나오면 더 이상 알려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제주도의 겉모습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나에게 제주도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자발적인 의지를 심어준 것은
며칠 전 다녀온 ‘추사 김정희 유배지’와 ‘항몽유적지’ 탐방이었다.

대정읍에 있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 입구



추사관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초등학생들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항몽순의비 앞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초등학생들

항몽유적지 토성의 모습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 가슴을 두근두근거리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역사라는 것이 승자에 의해, 서울의 입장에 의해, 작성된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던 책이었다.

며칠 전 다녀온 유적지에서 들었던 이야기도
거기에 숨겨진 이야기를 짚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내가 서울사람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았던 역사와
제주도 사람이 저자인 이 책에서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제주도의 역사가
이렇게 달랐구나!
그리고 숨겨져있던 몰랐던 역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느낌이다.

이 책은 변방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의 역사다.
어쩌면 우리에게 역사는 그저 주입식 교육에 의해 비판이나 생각없이 받아들여야하고
그저 그대로 외워야 하는 것이었다.
한때는 그것이 진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작성하는 자에 의해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것조차도 어떤 입장에서 작성하느냐에 따라 또다른 역사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의문 사항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시간이 유익했다.
그렇게 다시 생각해본 제주도에 관련된 역사 중 가장 최근에 다녀온 항몽유적지에 대한 글은 그곳에 대한 생각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게 했다.
저자는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에 관해서는 순의문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제주의 특성이라곤 전혀 없는 대한민국 스탠더드 충혼사당 정문 모양이며 
국립묘지건 현충사건 다 똑같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 이데올로기 고양차원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유신시대 군사정권의 허약한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졸속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보고 나니, 
이제야 그 장소의 기억이 다시 새롭게 난다.
유물 발굴을 위해 테두리 쳐놓았던 장소라든지, 
대통령들의 기념 식수가 가득했던 곳,
너무나 깔끔하게 정돈해놓아서 도대체 언제, 왜 만들었는지
의문을 갖게 하던 곳.
그런 의미가 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책에서는 제주도의 역사 이야기가 선사시대부터 4.3사건 현장까지
읽기 쉽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답사도 다녀올 수 있도록 ‘찾아가는 길’도 담아놓았다.


'찾아가는 길'이 담겨있어 답사 가고 싶어진다.

틈틈이 제주 역사 속으로 찾아가고 싶어진다.
지금껏 제주를 사랑한다면서도 제주의 겉모습에만 반해있었다면,
이제부터는 제주의 정신, 이곳에서의 역사에 귀기울이면서
좀더 폭넓은 시선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과의 만남은 시기적절한 만남이었고,
운명적이라는 느낌 마저 들어 
가슴이 마구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