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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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의 노인이 17세 소녀 은교를 사랑하는 이야기’라는 대강의 이야기를 알았을 때,
나는 이 책을 읽지 않기로 했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할 이야기가 가득할 것이라는 두려움!
하지만 박범신 작가의 글이라는 것에 마음이 바뀌었다.
<촐라체>에서 인상깊게 다가와 <고산자>까지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작가가 이 소설까지해서 세 소설을 ’갈망의 삼부작’이라고 했단다.
어찌 읽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지난 십여 년간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낱말은 ’갈망(渴望)’이었다. 
[촐라체]와 [고산자], 그리고 이 소설 [은교]를 나는 혼잣말로 ’갈망의 삼부작(三部作)’이라고 부른다. 
[촐라체]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고산자]에서는 역사적 시간을 통한 꿈의 수평적인 정한(情恨)을, 그리고 [은교]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감히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작가의 말에서)


이적요 시인의 일주기 되던 때,
Q변호사에게는 죽은 지 일년이 지나면 반드시 공개하라며 남긴 이적요 시인의 노트가 있었다.
보면 볼수록 파장을 일으키게 될 내용, 그리고 서지우 작가의 일기와 교차되며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본다.
이적요 시인과 서지우 작가에게 은교는 어떤 존재였는지,
그들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게 된다.

문제는 나의 열일곱과 너의 열일곱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그 무참한 기억의 편차 같은 것. (109p)

이적요 시인이 은교와 가장 큰 차이점은, 다르다고 느껴야만 하는 것은, 바로 그 기억의 편차, 시간의 단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열일곱과 나의 열일곱이 다르다는 것이 서럽게 느껴져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이 그저 일흔 노인이 열일곱 소녀를 사랑한 이야기가 전부는 아닐거라며, 
이 책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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