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천재의 출발점이 우리가 상상하는 화려한 환경과 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증인을 대대로 배출한 다빈치 가문은 이름 앞에 '세르'를 붙일 만큼 사회적 기반이 탄탄했지만 레오나르도는 혼외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세르 피에로는 네 차례 결혼했고 자녀도 무려 17명에 이르렀다.
복잡하게 얽힌 가계도를 그림으로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출생이 그의 교육과 진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선명해진다.
가업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을 처지가 아니었고 라틴어를 중심으로 한 정규 교육의 길에서도 비켜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세상을 정해진 방식대로 바라보지 않는 눈을 길러준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아버지가 그의 그림 솜씨를 알아보고 베로키오 공방으로 보낸 순간부터 인생의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당시 공방은 그림 몇 장을 그리는 작업실이 아니라 회화와 조각, 금속 세공과 각종 기술이 한데 뒤섞인 창작의 용광로에 가까웠다.
손을 움직이며 배우고, 다른 장인들의 작업을 곁에서 보고, 끊임없이 경쟁해야 했다.
훗날 회화와 과학, 기계와 인체 연구까지 거침없이 넘나든 레오나르도의 바탕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책은 한 예술가의 성공담에 머물지 않고 그가 살았던 피렌체의 공기까지 끌어온다.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과 파치 가문의 음모, 그 여파 속에서 흔들리는 예술가들의 삶이 이어지고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
특히 미켈란젤로와의 날 선 경쟁과 젊은 라파엘로가 레오나르도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는 과정은 르네상스를 거대한 인물관계도처럼 바라보게 한다.
천재 역시 홀로 솟아오른 섬이 아니라 스승과 경쟁자, 후원자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그의 스케치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크다.
새의 날갯짓을 관찰하다가 비행기계를 구상하고, 거대한 석궁과 전차, 기관총 같은 병기를 그리는가 하면 사람의 얼굴과 아기의 몸짓까지 끈질기게 들여다본다.
길에서 독특한 얼굴을 만나면 기억해 두었다가 그려냈다는 이야기를 읽고 기괴한 얼굴 데생을 바라보면 그의 눈이 얼마나 집요했는지 느껴진다.
아름다운 것만 골라 화폭에 옮긴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모든 것을 궁금해했던 사람이다.
한 장의 종이 위에서 예술가와 과학자, 관찰자와 발명가가 끊임없이 자리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