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목록을 거대한 도서관에 비유한 대목도 오래 남는다.
그 책장에는 인류가 함께 기억하기로 한 수많은 이야기가 꽂혀 있고, 가야고분군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가야는 강대한 왕권이 집권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세력이 오랜 시간 자율성을 유지하며 공존한 사회였다.
무덤과 부장품에 남은 대등한 흔적은 수평적 관계의 증거가 된다.
흙 아래 묻힌 유물들이 오래전 사람들이 선택한 공존의 방식을 오늘의 언어로 들려준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벅차다.
책장을 따라가면 유산이 창작의 원천으로 살아나는 장면도 만난다.
한반도의 샤머니즘은 현대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을 깨우고, 툰드라의 요이크는 억눌린 정체성을 되찾는 노래가 된다.
오페라는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새 감각을 받아들이고, 나이지리아의 놀리우드와 K-콘텐츠는 지역의 기억을 세계적인 이야기로 키워낸다.
과거는 창작을 붙잡는 짐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밀어 올리는 깊은 지층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