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로 가야겠다
도종환 지음 / 열림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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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고요로 가야겠다』는 도종환 시집 중에서도 특별한 무게를 가진 책이었다.

투옥의 시간, 격렬한 변화의 시기, 상실과 고열, 정치라는 소용돌이라 할 만한 현장까지, 삶의 가장 뜨거운 자리들을 지나온 사람이 기어이 걸러낸 언어들이 정제되어 담겨 있다.

그 모든 삶의 층위가 이 시집 안에서 응고된 채 조용히 빛을 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고요는 힘을 잃은 고요가 아니라, 견디고 견뎌내며 도달한 지점에 더 가까웠다.

시의 행마다 오래 끓여낸 듯한 정제된 온도가 있었고, 읽을수록 마음이 가라앉는 대신 단단해지는 감각이 이어졌다.

시인은 고통을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았고, 정면으로 마주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언어만 조심스레 남겨두었다.

그래서 이 시집의 고요는 멈춤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해 확보한 깊은 자리처럼 느껴졌다.


시인은 표현을 다루는 방식이 감정의 파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견뎌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묵음의 방식으로 마음을 열어준다.

또한 시대를 통과하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한 가지가 될 수 없음을, 분노와 무력함이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현실을 시인은 조심스레 풀어냈다.

시는 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지만, 그의 시는 그 흔들림의 바깥에서 다시 중심을 잡게 하는 힘이 있었다.

세상에 대한 마음과 자기 안의 상처가 어긋날 때,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통찰하게 된다.

시인은 삶의 가장 복잡한 현장에 오래 머물렀던 사람이다.

수많은 선택과 상처, 충돌과 화해를 지나온 끝에 도달한 고요는 비워내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채우기 위한 자리였다.


투옥 중에 편지와 시의 경계에서 태어난 언어들, 정치와 문학 사이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 애쓸 때 다져진 언어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오래 앓으며 얻은 언어들까지, 이 시집은 그 모든 시간을 품고 있다.

그래서 고요는 이 시집에서 어떤 감정의 바닥이 아니라, 복잡한 삶을 밀어 올리기 위해 다시 딛는 땅 같은 의미였다.

이 시집이 말하고자 한 고요의 실체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것은 소란을 끊기 위한 고요가 아니라, 스스로를 되돌리기 위한 고요였다.

삶의 한가운데서 균형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용히 걸러낸 언어였다.

시인은 이 책에서 그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으로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등을 내어주고 있었다.

그의 언어는 따뜻한 위로를 주기보다, 삶을 버텨낸 사람의 단단한 뼈대를 보여주며 묵묵히 말해주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시집은 지금 불안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 강하게 다가올 것이다.


『고요로 가야겠다』는 결국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온 문장들이 어떤 힘을 지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집이었다.

고요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정비의 순간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한 편 한 편의 시로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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