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옥 중에 편지와 시의 경계에서 태어난 언어들, 정치와 문학 사이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 애쓸 때 다져진 언어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오래 앓으며 얻은 언어들까지, 이 시집은 그 모든 시간을 품고 있다.
그래서 고요는 이 시집에서 어떤 감정의 바닥이 아니라, 복잡한 삶을 밀어 올리기 위해 다시 딛는 땅 같은 의미였다.
이 시집이 말하고자 한 고요의 실체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것은 소란을 끊기 위한 고요가 아니라, 스스로를 되돌리기 위한 고요였다.
삶의 한가운데서 균형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용히 걸러낸 언어였다.
시인은 이 책에서 그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으로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등을 내어주고 있었다.
그의 언어는 따뜻한 위로를 주기보다, 삶을 버텨낸 사람의 단단한 뼈대를 보여주며 묵묵히 말해주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시집은 지금 불안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 강하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