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어셔가의 몰락>은 광기와 고독이 어떻게 공간과 혈통을 갉아먹는지를 보여준다.
음습한 저택, 무너져가는 가문의 상징, 그리고 현실과 환상이 섞여버린 인간 정신의 붕괴.
어셔가의 저택은 한 인간의 내면이 시각화된 세계 같다. 친구의 방문조차 두려움으로 번지는 어셔의 불안은 시대를 초월해 현대인의 불면증과 불안장애를 떠올리게 한다.
포는 집이 무너지는 순간을 단순한 사건이 아닌, 인간의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는 상징으로 그려낸다. 이 짧은 단편 안에 많은 것이 응축되어 있다.
<적사병의 가면>에서는 죽음을 피하려는 인간의 허망한 욕망을 그린다.
전염병을 피해 성 안에 숨어든 귀족들이 화려한 가면무도회를 벌이지만, 결국 죽음은 가장 아름답게 장식된 방으로 들어온다.
포는 화려한 색채 묘사와 대비를 통해 공포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그 리듬 속에서 기묘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공포와 미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이만큼 섬세하게 표현한 작가는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