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소담 클래식 5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안영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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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 《독일인의 사랑》을 펼쳤을 때, 나는 오래된 편지를 조심스레 열어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활자에서 풍기는 은은한 빛이 낭만주의적 감성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고, 그 속에서 막스 뮐러가 남긴 사랑의 문장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그는 언어학자였으며 동시에 시인의 영혼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장은 이론보다 감성에 가까웠고, 설명보다는 여운을 남긴다. 사랑을 논하면서도 학문적 개념이 아닌 시적인 언어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긴 서정시 같았다.

이 소설은 마리아라는 여인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의 마음을 펼쳐내고 있다. 병상에 누워 일생을 마감한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저자는 사랑의 본질을 되묻는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단호하게 시작한다. 이 문장은 미학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고백이다. 그 고백 속에는 일시적인 열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향한 경외와 감탄이 배어 있었다.

읽다 보면 뮐러가 워즈워스를 깊이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워즈워스의 시 〈고지의 아가씨〉를 인용하며 사랑을 시로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나 또한 연서를 받은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낭만적 감수성이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또 〈소네트〉를 읊조리듯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시와 산문이 맞닿아 서로의 빛을 더욱 찬란히 드러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이란 감정이 언어로 어떻게 승화되는지를 곱씹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뮐러의 언어가 단순히 아름답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은 정확하면서도 음악적이고, 의미가 선명하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아마도 언어학자로서의 훈련과 시인의 자질이 동시에 녹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바로 낭만주의 서정시인 빌헬름 뮐러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혈통 속에 시와 언어의 힘이 얼마나 깊게 스며 있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사랑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확장되는가에 대한 통찰이었다. 뮐러가 말하는 사랑은 개인적인 소유나 욕망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류 전체를 향한 감정으로 확장되고, 초세속적인 차원에 이른다. 세속적 조건이나 외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랑하는 순간 자체가 인간을 정화하고 세계를 넓힌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기심과 효율이 앞서는 시대 속에서, 사랑을 통해 인간이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오래된 경구처럼 마음을 울린다.

우리들은 서고 걷는 것, 말하고 읽는 것 등을 배운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사랑이란 우리들의 생명과 같은 것이어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우리 존재의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사랑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우리 존재의 밑바탕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마음 깊이 공감했다. 우리는 걷는 법이나 말하는 법을 배우지만, 사랑은 그저 내 안에 이미 심어져 있는 씨앗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키우고 가꾸는 과정이 곧 인생의 본질이라는 통찰은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삶을 뚫고 나온 진리처럼 다가왔다.



《독일인의 사랑》은 한 편의 연애소설로 읽히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 존재와 감정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숨어 있다. 시적 언어와 학문적 통찰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 읽는 동안 나의 마음은 사랑의 무게와 아름다움 사이를 쉼 없이 오갔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사랑이란 결국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 자체라는 사실을 선명히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에게는 잊고 있던 뜨거움을 다시 불러오고, 아직 사랑을 기다리는 이에게는 그 시작이 얼마나 눈부실 수 있는지를 예감하게 한다. 무엇보다 언어의 힘으로 사랑을 승화시킨 고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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