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중심에는 신임 간호조무사와 과거의 상처를 품은 의사가 있다. 두 인물의 관계는 의료 현장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서로의 삶과 상처에 깊이 관여하면서,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특히 한 인물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단순한 트릭을 넘어 인간 본성과 윤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치넨 미키토가 포스트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별칭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릭을 위한 트릭이 아니라, 서사의 끝에서 반드시 감정적 파동을 남기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문득 의료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하지만 드라마 속 미화된 장면과 달리, 이 소설의 수술실과 병동은 훨씬 냉정하고 복합적이다.
환자의 의사, 가족의 반응, 의료진의 피로와 갈등, 그리고 병원 밖에서의 삶까지—작가는 의료인이자 작가로서만 표현할 수 있는 리얼리티를 놓치지 않는다.
특히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감정이, 마음이 있다는 메시지는 작품 전반에 깊게 깔려 있다. 이는 의료 현장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관계에서 되새길 만한 문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단순히 스릴러적 재미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넨 미키토는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세밀한 묘사 속에서도, 사람 사이의 유대와 회복을 놓치지 않는다.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인물들이 서로를 통해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 모습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