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소담 클래식 3
제인 오스틴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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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오만한 편견과 편견 속의 오만, 이 두 단어가 얼마나 정교하게 인간의 감정을 꿰뚫을 수 있는지를 증명한 책이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이번에 소담출판사에서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이 에디션은, 표지부터 색감까지 고전의 감성을 품은 동시에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된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남녀의 시선, 그리고 보라색 위의 정갈한 타이포그래피까지.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제된 감정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고전을 여러 번 읽어도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번역의 숨결마다 인물의 숨소리조차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번역본은 언어가 지나치게 고풍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현대어에 맞춰 왜곡되지도 않아, 원작의 뉘앙스를 비교적 충실히 살렸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주고받는 미묘한 말들의 뉘앙스를 따라가며 느껴지는 감정의 교차점은 고전 로맨스의 진수를 느끼게 해준다.

『오만과 편견』은 로맨스 소설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신, 오히려 감추고 숨기고 견제하면서 점점 쌓아 올리는 서사는 요즘의 빠른 감정 전개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왜냐하면 그 느린 진행 속에서 감정이 얼마나 섬세하게 묘사되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아시의 고백은 뻔한 사랑 고백이 아니라 진심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의 폭발이다. 그런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책을 읽으며 엘리자베스의 시선과 다아시의 오해가 빚어내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감정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불쑥 튀어나오는 시기심, 자존심, 그리고 자각.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 꼭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쁜 마음을 품었거나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결국 오해는 생길 수 있고, 누군가는 불행해질 수도 있다 (책 속에서)

책 서두에 등장하는 이 한 줄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에는 현실의 다양한 인간 군상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웃의 불행을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사람, 반대로 조용히 손 내밀어 도우려는 사람, 자녀의 혼사에 지나치게 관여하며 이익을 계산하는 부모들까지.

이 모든 요소가 지금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다. 200년 전 이야기지만 인간의 본성과 삶의 방식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절로 느껴진다.

또한 이 책은 여성의 삶을 제한하던 시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베넷가의 다섯 자매는 혼인을 통해서만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었고, 지위와 재산이 결혼을 결정짓는 가장 큰 기준이 되는 사회 속에서 자유롭게 사랑을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복잡했는지를 오스틴은 특유의 위트와 통찰로 보여준다.

당사자들의 애정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고 에둘러 돌려 말하는 방식 또한 시대적 제약의 산물이지만, 그래서 더욱 품격 있는 문장들로 남아 마음에 오래 머무르게 한다.


제인 오스틴은 1775년 겨울, 책을 사랑하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익명으로 출간할 정도로 겸손했지만, 그녀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처음엔 『첫인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시도했지만 거절당한 후, 제목을 바꿔 『오만과 편견』으로 출간했고, 이는 이후 그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이해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을 거쳐야 하는가.

사랑은 어떤 형식으로든 우리 삶에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는 감정이며, 결국 그 질문 앞에 진심으로 응답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사랑은 완성된다.

『오만과 편견』은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여정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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