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여러 번 읽어도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번역의 숨결마다 인물의 숨소리조차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번역본은 언어가 지나치게 고풍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현대어에 맞춰 왜곡되지도 않아, 원작의 뉘앙스를 비교적 충실히 살렸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주고받는 미묘한 말들의 뉘앙스를 따라가며 느껴지는 감정의 교차점은 고전 로맨스의 진수를 느끼게 해준다.
『오만과 편견』은 로맨스 소설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신, 오히려 감추고 숨기고 견제하면서 점점 쌓아 올리는 서사는 요즘의 빠른 감정 전개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왜냐하면 그 느린 진행 속에서 감정이 얼마나 섬세하게 묘사되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아시의 고백은 뻔한 사랑 고백이 아니라 진심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의 폭발이다. 그런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