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떠나는 수밖에 - 여행가 김남희가 길 위에서 알게 된 것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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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여행작가 김남희의 여행기 『일단 떠나는 수밖에』는 단지 짐을 싸서 어디론가 떠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책은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만난 풍경과 사람, 그리고 그 안에서 진화하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여정의 기록이다.

제목부터가 인상적이다. '일단 떠나는 수밖에'라는 말에는 궁지에 몰린 듯한 절박함이 깔려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삶을 붙잡기 위해 선택한 용기가 스며 있다.

여행이 누군가에겐 사치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김남희에게 여행은 생존이고, 길 위에서야 비로소 살아 있는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의 무게가 문장마다 느껴진다.

이 책에는 탄소중립의 시대에 여행이 과연 옳은가를 묻는 자기반성도 담겨 있다.

저자도 지구를 위해서는 여행을 멈추는 것이 답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떠남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솔직하게 풀어낸다.

파편처럼 흩어진 지구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며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광휘를 기록하려는 그의 태도는 이기적인 도피가 아니라 생명과 감각을 일깨우는 간절한 애정처럼 느껴진다.

책 속에는 파타고니아의 야생에서부터 유럽 알프스, 아프리카의 대초원, 키르기스스탄의 초원에 이르기까지 생동감 넘치는 묘사들이 가득하다.

단순히 장소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곳의 공기, 소리, 냄새, 사람들의 눈빛까지도 함께 담아낸 듯한 표현들이 이어진다.

특히 키르기스스탄 편에서는 해발 3,500미터 고원에서 만난 현지 청년들과의 교류, 그리고 초록의 대지에서 느낀 마음의 평화 등 이 책을 읽는 내내 눈앞에 풍경이 그려지는 듯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따뜻한 교감은 이 책의 또 다른 보석이다.

전 세계의 낯선 이방인들과 나눈 대화 속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다움이 녹아 있다.

고산병에 시달리며 함께 걷던 이, 자신보다 더 아픈 동물을 걱정하던 사람, 숙소 없는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이한 현지인까지.

그 만남들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정서적으로도 큰 울림을 준다.

저자는 말한다. 최고의 여행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이었다고.

그의 문장은 감성적이면서도 생생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삶을 바라보는 투명한 시선, 거기에 덧입혀진 여행자로서의 고뇌가 빛난다.

때로는 고백하듯, 때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독자를 위로하고, 때로는 동행자가 되어준다.

사라진 광휘까지도 토닥이는 마음이 이 책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

저자는 여행지에서 환경 문제와 맞닥뜨린다. 얼룩말의 무리에서 떨어져 사라져간 생명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의 균형을 되묻는다.

무너진 빙하의 모습 앞에서는 침묵하고, 탄소 배출 문제를 실감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고민한다.

탄소중립도시를 언급하고, 생명을 배려하는 여행을 향한 의지도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 성찰은 피상적이지 않고, 여정을 마친 자만이 할 수 있는 진심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아름다운 여행기인 동시에, 한 사람의 내면 성찰서이기도 하다.

어디서 왔는지, 왜 살아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기록.

김남희의 여행은 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되찾는 길이었다. 그 여정이 있었기에, 그는 오늘도 길 위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일단 떠나는 수밖에』는 한 장 한 장이 여행지의 풍경처럼 펼쳐진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잠시 숨을 고르게 되고,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낯선 땅의 들풀, 그 땅을 걷는 이의 숨결, 그리고 그 위에서 끈질기게 살아가는 생명의 소리까지.

이 책은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지금 떠날 수 없는 이들에게도 묵직한 위로와 설렘을 동시에 전하는 여행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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