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진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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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가와무라 겐키.

그가 소설가로 풀어낸 세계는 한 편의 영화처럼 시각적으로 펼쳐지면서도, 활자 속에서만 가능한 깊이와 감정의 밀도를 함께 품고 있다.

『신곡』은 그가 만들어낸 강렬하고도 충격적인 세계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가와무라 겐키의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책을 덮고 나니, 이유는 수없이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무게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소설은 학교 건널목에서 벌어진 무차별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현실로부터 시작된다. 뉴스에서 몇 줄로 소비되고 잊혀질 법한 사건.

하지만 가와무라 겐키는 그 중 한 명, 피해자 단노 미치오의 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촘촘한 망을 짠다.

아들을 잃은 가족이 겪는 고통, 분노,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 이 책은 죽음이 아닌 남겨진 자의 삶을 조명하며 이야기의 본질을 파고든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처음엔 모든 게 혼란스럽고 허무하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부모들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 모임은 치유의 장이기도 했고, 때로는 또 다른 갈등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는 임상심리사를 찾아 심리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슬픔을 언어로 꺼내어 본다. 하지만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말로 다 털어낼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슬픔은 언제나 균열 속에서 솟아오르고, 고요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놀라웠던 건, 피해자 가족의 곁을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의 존재다. 영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노래를 통한 위안을 설파하는 이들은 구원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만, 실상은 연약한 자를 포섭해가는 함정이었다.

교코는 그런 합창단에 참여하면서 점점 다른 길로 향한다. 영원의 소리라 불리는 합창이 위로가 될지, 또 다른 굴레가 될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 장면들 속에서 신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질문하게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음 장면은 어떻게 전개될까'라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사건은 깊어지고, 인물은 더 입체화된다. 가와무라 겐키 특유의 서사는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간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 때까지도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다 읽은 뒤에도 한동안 멍하니 책을 바라보게 된다.

정제된 문장,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애틋한 정조가 뒤섞인 이 소설은 신과 인간, 믿음과 회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끌어안고 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뿐이다." 이 책이 도달하는 결론은 비관도 낙관도 아니다. 살아가는 사람의 자세에 가깝다.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타인을 향한 분노를 견디며,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신곡』은 종교와 인간, 가족과 슬픔, 그리고 구원에 대한 깊은 성찰을 던진다.

'신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까?'라는 문구가 책띠지에 적혀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이 있다면, 그는 우리 곁에 있는 고통을, 함께 끌어안아 주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이 소설은 무너진 마음 위에 놓이는 다리처럼 다가온다. 가와무라 겐키의 필력은, 그 다리를 건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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