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기쁘다 - 한강의 문장들 푸른사상 교양총서 23
민정호 지음 / 푸른사상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다른 이의 시선으로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익숙한 한강의 작품이 이토록 낯설게 다가올 줄은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익숙한 풍경을 낯선 계절에 다시 마주하는 감각처럼 느껴진다. 『봄에는 기쁘다』는 바로 그런 느낌을 건네주는 책이다.

이미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등을 통해 한강의 문장을 체험해봤다. 그 체험은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침묵 앞에 멈춰 서게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고요한 충격을 저자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문학평론가의 말투도 아니고, 철학자의 분석도 아니다.

이 책은 그저 한 사람의 독서가가 '이 장면, 나도 오래 붙들고 있었어요'라고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책이다.



『봄에는 기쁘다』는 총 44편의 짧은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한강의 소설에서 발췌한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

『아기 부처』 『내 여자의 열매』, 174쪽

이렇게 한강 소설 문장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글은, 단지 계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버텨낸 시간 이후의 감정이라는 깊은 층위로 이어진다.

매 챕터마다 이렇게 하나의 문장을 고르고, 그 문장과 함께 걸어가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 문장을 오래 곱씹고, 그 문장에서 파생되는 삶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이 책이 한강을 분석하기보다 한강을 체화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강의 문장을 문학적 업적이나 사회적 맥락으로 해석하기보다, 그것이 스며든 자신의 삶의 파편들과 마주 앉아 대화하듯 글을 써 내려간다.

한강의 작품은 인간의 욕망과 욕구, 절망과 슬픔이라는 근원적 질문에 맞서며, 침묵과 고통이라는 방식으로 응답해왔다.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어긋남을 대면하게 만들면서도, 책은 결코 판단하지 않는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그 점이다. 애써 결론을 내리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그 질문은 독자 각자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또한 『봄에는 기쁘다』는 한강을 읽는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문학을 해석하는 틀에 갇히기보다, 문장 하나에서 비롯된 생각의 가지들을 따라가며 독자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읽기다.

이 책은 감정과 문장이 만나는 접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거기엔 함부로 위로하지 않으면서도 곁에 있어주는 태도가 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한강의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번엔 예전과는 다르게 읽게 될 것이다.

이제는 그녀의 문장을 곁에 둔 또 다른 한 사람의 시선을 통해, 좀 더 가까이, 좀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한강의 문장을 따라 걷는 이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봄에는 기쁘다』는 한 권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 다시 책장을 열게 만드는 저력이 있는 책이다.

어떤 문장은 잊히지 않고, 어떤 문장은 살아남는다. 이 책은 그런 문장들을 기억하는 법에 대해 말해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