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의 재산 - 친일이라는 이름 뒤의 ‘돈’과 ‘땅’, 그들은 과연 자산을 얼마나 불렸을까
김종성 지음 / 북피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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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친일파의 재산'이라는 책은 제목에서부터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은 한국 근대사의 어두운 면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친일'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돈'과 '땅'의 진실을 파헤친다.

저자인 김종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친일파들의 죄악과 그들이 축적한 부를 낱낱이 밝히며, 친일 행위가 얼마나 '수지맞는 장사'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하고 행동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예를 들어, 이완용이 당시 경성 최고의 '현금왕'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가 벌어들인 돈은 단순한 생계 유지가 아닌, 적극적으로 재산을 불리는 데 사용되었고, 이는 그를 비롯한 친일파들이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친일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지은이 김종성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월간 「말」 동북아전문기자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했으며,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유산채널>(구 <헤리티지채널>)의 자문위원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문화유산채널>에 명사칼럼을, 「민족 21」과 웅진씽크빅의 「생각쟁이」에 역사 기고문을 연재했으며, 「오마이뉴스」에 <김종성의 히스토리>,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등을 비롯한 여러개의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기업인들에게 한국사를,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외부강사로 삼성 신입사원들에게 역사를 강의했고 기독교방송(CBS), 교통방송(TBS), 불교방송(BBS) 등 여러 방송의 역사 코너에도 고정 출연했다. 지금은 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책날개 중에서)

친일파란?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침략에 편승해 이에 부역하는 행위를 하거나 지위를 차지해 한국의 자주 · 독립을 방해한 자들

(책속에서)

페이지를 넘기면 '친일파 30인의 생몰 연대표'가 눈에 띈다.

그리고 차근차근 보면서 사실 놀랐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이들이지만, 그들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이 부분을 외면해왔는지를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연대표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닌,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의 한 단면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경고와도 같다.

'친일'이라는 이름 뒤의 '이득'과 '소득'

친일에 관한 오해 중 하나는 '친일은 부득이했다'는 논리다. 일제의 위협과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을 뿐이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친일이 부득이했다면, 해방 직후부터 친일청산열기가 고조된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친일파들이 일제의 강요와 협박 때문에 억지로 친일하는 모습을 동시대의 대중이 목격했다면, 해방 직후에 대중이 친일청산을 거세게 요구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대구 폭동으로도 불렸던 1946년의 대구 10월항쟁은 미군정의 경제정책 실패와 토지개혁 지연 때문에도 폭발했지만, 미군정의 친일파 기용에 대한 분노 때문에도 폭발했다. 친일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동정의 여지가 있는 일로 비쳤다면, 그 시대 대중의 분노가 친일청산을 명분으로 그처럼 쉽게 응집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10쪽)

이 책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충격적인 내용들이 가득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이 예상 밖의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거나, 의외로 도박으로 탕진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러한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과 그로 인한 파급 효과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임금의 형이 나라를 팔아 이완용보다 5배 더 많은 보상을 받았다든지, 이완용이 경성 최대의 현금부호가 되었다는 사실 등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역사적 진실임을 일깨워준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되면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1909년에 이토 히로부미를 뒤따라 세상을 떠날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난 이완용은 1926년에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이나 일제의 비호 아래 차곡차곡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관료 출신치고는 이례적으로 자산 순위 1, 2위를 다투는 갑부 반열에 올랐다. 친일매국이 그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것이다. (50쪽)

이완용은 1909년 암살 시도를 겪었음에도, 이듬해 대한제국 퇴직금과 잔무수당까지 챙겨 '알뜰히' 모은 끝에 1925년에는 한국인 부자 2위로 기록되며 경성 최대의 현금 부호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역사적 평가나 도덕적 책임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몰두한 파렴치한 삶을 살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삶은 한 개인의 탐욕이 얼마나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은 친일파들의 재산이 단순히 그들의 탐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 근대사에서 왜곡된 권력 구조와 부의 분배를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이 책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친일 청산'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이 책은 한국 근대사의 어두운 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과거의 역사를 되새기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강력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친일파의 행위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역사와 정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며, 한국 사회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주제를 다루고 있다.

『친일파의 재산』은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고,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정의를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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