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이 어떤가 궁금하시다면, 살짝 언급하자면 삶 속의 각종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듯 다양했다. 거기에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농담처럼 가볍게 흘러가기도 한다.
부담 주지 않으면서 쉬운 언어로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듯하다.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게 잡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형 느낌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러니 부담 없이 읽어나가다가 문득 마음에 훅 들어오는 문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막 무슨 새들이 지구에 투신하는 소리 같으다. 이 좋은 가을날 스스로 몸을 던지는 나뭇잎들을 보자니 어디선가 많이 닮은 풍경이 생각난다.
아, 맞다. 나도 나를 어디론가 힘껏 던지는 힘으로 살아남았다. 참 고독하고 쓸쓸한 일이었다. (52쪽, 「고독하고 쓸쓸한 일」 전문)
중간중간 비속어는 류근이라는 장르라고 보면 되겠다. 그가 하면 자연스러운데 내가 쓰자니 어색한 느낌이다.
그래서 진지하게 가다가 반칙임을 깨달았는지 마지막 단락은 비속어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어울린다. 그래야 느낌이 강렬하게 와닿는 듯하다.
언젠가 고비사막에 간 소설가 김연수가 그곳 유목민이 '낙타 국수'를 끓이는 모습을 보더니 "낙타는 제 배설물로 제 고깃국을 끓이네"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참 좋은 소설가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다. 이 지상에서의 삶이란 전생에 내가 쏟은 배설물들에 의해 뜨겁게 익어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처럼 비 오고 바람 불고 해 뜨고 빚쟁이까지 뜨는 날일지라도 억세게 뜨겁게 성숙해 가는 것 아름답지 않은가. (270쪽, 익어가야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