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귀촌을 꿈꾸고 실행에 옮겼을 때, 나는 야외 테이블에서 우아하게 석양을 바라보며 티타임을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모기에게 잔뜩 뜯기는 데다가 온갖 벌레들이 달려들고 소리를 내며 휙 지나가기도 하니, 감성적인 시간을 보내기는커녕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철수해야 한다.
잔디밭은 또 어떤가. 그 와중에 잡초는 또 얼마나 많이 자라는지, 어느 순간 잡초가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여름에는 손쓸 틈 없이 무성하게 자란다. 잡초가 자라며 벌레들도 극성이다. 그래서 귀촌 이후에 나는 여름이 무섭다.
처음에는 정원을 가꾸고 이쪽에는 이 꽃들을 심고, 저쪽에는 저 꽃들을 심어야지, 생각했다. 방울토마토도 가꿔서 수확해서 먹고, 고추, 가지, 상추 등 채소도 심어서 식사 준비하다가 밭에서 즉석 해서 쓱쓱 뜯어와서 밥상에 올려야지 등등 야무지게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멋모르고 밭에다 그냥 씨를 뿌렸더니 새벽부터 짹짹, 동네 새들이 잔치를 해서 다 먹고 가고, 다시 오일장에서 모종을 사 와서 심어서 키웠을 때에는 벌레들이 점령을 해서 얻어먹을 것도 없었다.
벌레와 5 대 5 정도는 용인할 수 있었지만, 결과는 9 대 1 정도로 점령당하고 참패했으니, '안 먹어 안 먹을 거야.'라며 여우의 신포도처럼 생각하고 말았다.
어쩐지 오일장에 호미 사러 갔을 때, 호미 파는 할머니가 "그냥 사다 드시지……."라고 하신 말씀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종 사고 키우고 하느니, 사 먹는 게 훨씬 나았다.
내가 내 이야기부터 신나서 가득 펼치는 데에는 이 책이 그 이야기를 끌어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력 있는 정원가에게는 나와 반대의 문제도 있었다.
나도 당근이나 사보이, 상추, 콜라비를 재배해본 적이 있다. 그것도 여러 번. 물론 농부의 삶에 대한 낭만적 환상으로 시작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매일 혼자서 무 120개씩을 먹어 치워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족 누구도 먹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다음 날은 사보이 늪에서 허우적댔고, 또 다음 날에는 질기디 질긴 콜라비를 미친 듯이 먹어야 했다. 넘쳐나는 상추를 버리지 않으려고 한 주 내내 상추로 삼시 세끼를 해결한 적도 많다. 채소밭 정원가들의 즐거움을 깰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채소를 재배하면 자신이 기른 것들을 입안에 마구 욱여넣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115~116쪽)
이런 문제든 저런 문제든,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어서 더욱 '맞아, 맞아' 공감하며 읽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결국 포기했지만, 작가는 해냈다. 카렐 차페크와 요제프 차페크 형제는 해냈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정원의 열두 달을 가꿔나간 이야기에 시선을 집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