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작품은 짧고 강렬하다.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이혼'이라는 단어로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다니 참신한 느낌으로 읽어나간다. 그런데 '어,어,억'하면서 한 작품이 끝나버리는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는 독특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라는 생각 말고, '이런 사람들도 다 있군'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동조한다. 그렇게 그들의 생각에 들어가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량한 인간과 불량한 인간,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인간.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은 미치도록 선량을 동경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불량에 이끌리고, 그리하여 결국, 선량과 불량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평생 선량을 동경하고 불량에 이끌리면서 살아간다. (61쪽, 「선잠」 중에서)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의 뒷이야기라고 하여 더욱 관심 있게 읽어보았다. 보통은 소설 하나가 끝나면 그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끝나고 말지만, 그 인물들을 제대로 살려낼 사람은 그 소설을 쓴 작가뿐이니, 더욱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이 책은 1989년부터 2003년까지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쓰인 단편들을 한 권으로 묶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묶어놓았느냐도 감상의 느낌을 결정짓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것을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으로 숨결을 불어넣은 그녀만의 작품이라고 느껴지는 단편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