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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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이 있다. '나 그 책 별로였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그때는 왜 별로였지? 이렇게 괜찮은데……. 정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 말이다. 그때의 나도 나, 지금의 나도 나인데 왜 이렇게 느낌이 다른 건지?

소설 중에는 특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그렇다. 그동안은 나에게 극과 극의 느낌을 주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와 맞는 시간대가 있는 것이다.

그 시기를 잘 맞추어 만나면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이 나의 시간대와 잘 맞아떨어진 듯하다.

옮긴이의 말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는 유독 일상의 범주를 벗어난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것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어느덧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더 나아가 '이것도 뭐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마니, 매번 당황스럽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긍할 수 있게 만드는 작가로서의 능력이 얄미우리만치 부러울 따름이다. (314쪽)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나 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나 보다.

그리고 이 책은 2008년 3월에 초판 1쇄를 발행했는데, 이번에 2022년에 개정판 1쇄를 발행한 것이다. 그 당시에 이 책을 읽었는지 읽다 말았는지 건너뛰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볼 기회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제목부터 일상적이지만 독특한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에쿠니 가오리,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 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1992), 『나의 작은 새』로 로보노이시 문학상(1999), 『울 준비는 되어 있다』로 나오키상(2003), 『잡동사니』로 시마세 연애문학상(2007), 『한낮인데 어두운 방』으로 중앙공론문예상(2010)을 받았다.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 불리는 그녀는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도쿄 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좌안1·2』, 『달콤한 작은 거짓말』, 『소란한 보통날』, 『부드러운 양상추』,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뒤의 기억』,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벌거숭이들』, 『저물 듯 저물지 않는』, 『개와 하모니카』, 『별사탕 내리는 밤』 등으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책날개 저자소개 전문)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 단편소설집이다.

러브 미 텐더, 선잠, 포물선, 재난의 전말, 녹신녹신, 밤과 아내의 세제, 시미즈 부부,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기묘한 장소 등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는 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후에도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데, 여기에 실린 아홉 편 가운데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소설의 뒷이야기입니다. 「포물선」은 처음으로 문예지에 소개되어 기쁨을 주었던 소설이고, 「선잠」은 그림이 많이 실린 문예 무크지라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313쪽)




첫 작품은 짧고 강렬하다.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이혼'이라는 단어로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다니 참신한 느낌으로 읽어나간다. 그런데 '어,어,억'하면서 한 작품이 끝나버리는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는 독특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라는 생각 말고, '이런 사람들도 다 있군'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동조한다. 그렇게 그들의 생각에 들어가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량한 인간과 불량한 인간,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인간.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은 미치도록 선량을 동경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불량에 이끌리고, 그리하여 결국, 선량과 불량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평생 선량을 동경하고 불량에 이끌리면서 살아간다. (61쪽, 「선잠」 중에서)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의 뒷이야기라고 하여 더욱 관심 있게 읽어보았다. 보통은 소설 하나가 끝나면 그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끝나고 말지만, 그 인물들을 제대로 살려낼 사람은 그 소설을 쓴 작가뿐이니, 더욱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이 책은 1989년부터 2003년까지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쓰인 단편들을 한 권으로 묶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묶어놓았느냐도 감상의 느낌을 결정짓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것을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으로 숨결을 불어넣은 그녀만의 작품이라고 느껴지는 단편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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