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 신예희의 여행 타령 에세이
신예희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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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니 문득 약간 뭉클하고 서럽고 오묘하고 그렇다. 나도 약간의 타령 비슷한 걸 하고 싶어졌다.

나도 한때 여행을 꿈꾸며 여행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시작 무렵만 해도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여행 떠날 수 있는 기회도 곧 오겠지~ 생각했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파리에 한번 가볼까' 생각했다가, 때마침 검색해 본 항공권이 엄청 저렴했고, 그렇게 예약해서 다녀왔던 그때의 그 여행이 해외여행의 마지막이었으니…….

내가 꿈꾸던 즉흥여행을 실행에 옮긴 게 그때였는데, 아, 그전의 여행도 참 좋았는데, 아득한 먼 옛날, 아니 전생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그냥 책을 읽으며 이 타령에 동참하는 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아, 나도 그랬는데…. 그때 좋았지. 나 때는 말이야 등등 제대로 라떼 타령도 해보고, 기억을 더듬으며 여행을 떠올려본다.

"여행 썰을 풀다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 구글 지도를 열고, 이 모든 게 끝나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장소를 표시해본다." (책표지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신예희. 세계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책날개 중에서)

쌓이고 쌓여 사리가 될 지경이라 일기라도 써보기로 했다.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잔뜩 쓰고 나면 속이 좀 풀리지 않을까? 워드 프로그램의 빈 문서를 열어놓곤 하소연이나 다름없는 문장을 마구 뿜어냈다. 한두 장쯤 쓰면 적당히 마무리되겠지. 그런데, 어라? 냅다 시작된 글이 끝날 줄을 모르고 술술 풀려나온다. 끝내야 할 마감이 있는데도, 한참 작업하던 책 원고가 있는데도 못 본 척 슬쩍 미뤄놓곤 정신없이 글을 썼다. '여행'이란 2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할 말이 너무 많았다. 내 속 어딘가에 이야기가 웅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서어서 꺼내주길 기다렸던 모양이다. (6쪽)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여행'이라는 2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를 시작으로, 1부 '낯선 곳에서는 사소하지 않은 용기가 생긴다', 2부 '그곳이 어디든, 난 내 삶을 잘 살고 싶다'로 이어지며, 에필로그 '나는 내내 여행을 생각했다'로 마무리된다.



첫 이야기는 기내식부터 시작된다. '기내식 카트가 다가올 때의 그 기다림, 정말 길지. 그래서 나는 채식 메뉴를 미리 신청하고 갔지.' 이러면서 읽는다.

언젠가 인도행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채식메뉴를 주문해서 받은 사람들이 먼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보면서 '먹는 거 쳐다보면 안 되는데…….' 생각하며 흘끔흘끔 군침흘리며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아예 채식 메뉴로 신청하고 갔다. 단지 밥이 빨리 나온다는 점에서.

하지만 베지테리언식은 아침 메뉴에 오믈렛을 먹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으니…. 아참, 아이스크림도 안 주려는 걸 괜찮다고 하면서 받기도 했다.

그리고 호기심에 힌두교 식사를 신청했다가 난생 처음으로 강하고 낯선 향 때문에 남기고 말았다. 저자는 그저 호기심에 유대교 식단을 신청해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맛은, 음, 좋은 경험이었다.(17쪽)'라고 한다. 무척 반갑게 리액션을 뿜어내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통통 튀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도 나도~'를 외치며 내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너도나도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여행 이야기도 꺼내들며 회포를 풀 수 있겠다.



기내식부터 공항에서 숙소까지, 짐 꾸리기, 여행의 취향, 기록, 혼자 하는 여행과 동행인이 함께 하는 여행, 책 이야기 등등 들려주는 이야기에 쉴 새 없이 동조하며 읽어나간다.

또한 거리낄 것 없이 당당하게 내뱉는 이야기에 '우리 끼린데 뭐' 하는 느낌으로 읽어나간다.



요즘 나의 관심은 책이니 책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는다. 여행에 가져갈 책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좋을까? 우선 뭐니 뭐니 해도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책은 집에서든 여행지에서든 읽기 싫다. 아마 수감 중이어도 그럴 것 같다(겪어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심각하게 재미있는 책은 또 그 나름대로 곤란한데, 왜냐고요? 도에 지나치게 재미있는 나머지 읽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지기 때문이다. 후루룩 뚝딱 한 권이 끝나버린다. 여행 초반에 가져간 책을 다 읽어버리면 큰일이다. 남은 시간은 뭘 하라고! 게다가 책 내용에 몰두하느라 여행이고 나발이고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 추리소설만 잔뜩 챙겨갔다가, 숙소에서 밀실 살인 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곤란하다. 그러니까, 재미는 재미대로 있으면서 읽는 속도는 너무 빠르지 않을 만한 책이 좋겠네요. 그런데 그런 책이 과연 있을까요? (165쪽)

아 그러고 보니 전자책. 이제는 전자책이 있으니 책의 무게 같은 것은 상관이 없겠다. 이런 거 보면 나도 옛날에 여행을 즐긴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무사히 여행을 마친다는 기적, 그러고 보니 지금껏 여행을 떠났다가 집까지 무사히 와서 잘 살아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기적이다.

난 사실 여행 전에 책상이든 방이든 어디 한 군데 어지럽혀놓고 출발하곤 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직접 치워놓을 수 있도록.

무언가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면 불안한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여행을 떠날 때 두근거렸던 것은 어쩌면 겁이 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보험이란 현대인의 샤머니즘이니까.(198쪽)' 그 말처럼 여러 장치를 해놓았고 무사히 다녀왔고, 지금은 그런 기억도 희미해져버렸지만, 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으리라 꿈꾸고, 여행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뭉클한 그런 시간을 보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내내 여행을 생각했다. 이 모든 게 끝나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장소를 꼽아보았다. 좋아, 여기에선 이걸 하고, 이걸 먹을 거야. 저기에도 가야지. 정말 정말 재미있게 놀 거야. 구글 지도를 열어 그리운 장소를 살살 훑어 나가기도 했다. 즐겨찾기에 등록해 초록색 별표가 생긴 곳들을 하나하나 눌러보며 즐거워했다. 아휴, 이 골목 기억나. 이 가게 정말 귀여웠다고. 물론, 모두 여전한 건 아니었다. 길어진 팬데믹 때문인지 폐업을 선언한 가게도 여럿이었다. 클릭 한 번이면 즐겨찾기를 삭제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당장은 힘들어도 곧 다시 문을 열 거라고 생각해서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분명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우리 모두 그리운 장소에서, 꿈꾸던 장소에서, 곧 다시 만나요. (203쪽)

여행을 떠올릴 때에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말이다.

그럴 때에는 여행에세이를 읽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여행 '타령' 에세이도 괜찮겠다.

오히려 여행하면서 어떤 점들이 좋았는지, 나의 여행은 어땠는지, 기억을 떠올리는 재미가 쏠쏠해서 더 읽는 맛이 있었다.

다음 여행이 언제가 될지 알 길은 없지만, 지난 여행을 떠올리는 것은 당장이라도,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니, 한참을 생각에 잠겨본다. 꽤나 괜찮은 시간을 선사해 준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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