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이어령 유고집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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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어령 유고집 《작별》이다. 이번 책에서는 어린 시절에 듣고 불렀던 구전 동요, 왜 그런지도 모르고 그냥 불렀던 그 노래에 나오는 단어들을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 기억 속에, 아주 어렸을 때로 돌아가고 돌아갔을 때 문득 들려오는 노래 하나가 있습니다. 나 자신도 놀랍습니다. 고상한 노래가 아닙니다. 철학적인, 무슨 엄청난 노래도 아닙니다. 지금도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구전동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10쪽)

사실 원숭이부터 백두산까지 말도 안 되게 이어지는 이 노래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지도 못하고 부르곤 했는데, 이 노래에 나오는 단어들을 키워드로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다니, 이 책을 보면서 놀라고 또 놀란다.

이 책에서는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등의 다섯 가지 키워드, 새로운 키워드 '반도 삼천리', '삼삼삼', '5G, 누룽지·묵은지·우거지·콩비지·짠지', 5G에서 뻗어나간 가지 '호미, 심마니, 해녀 그리고 바나나 우유', 기차에서 뻗어 나간 가지 '깃털 묻은 달걀', 비행기에서 뻗어 나간 가지 '드론과 생명자본', '나의 헤어질 때 인사말, 잘 가 잘 있어', '내가 없는 세상의 새로운 이야기',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의 저자는 이어령. 문학평론가이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이화여대 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88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위원, 초대 문화부 장관, 새천년준비위원장,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책날개 발췌)



이어령 선생님의 글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듯해서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책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저 어린 시절에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불렀던 노래, 지금도 떠올려보면 물론 도대체 뭔지 모르는 상태인데, 그 노래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엮어나갔다.

원숭이는 1909년 일본 사람들이 창경궁에 처음으로 동물원을 만들고, 그때 거기다가 원숭이를 넣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살아 있는 원숭이를 처음 본 것은 1909년이라고 한다.

사과는 1901년 윤병수라는 사람이 미국 선교사로부터 묘목을 다량 들여오면서 유입되었다. 1901년, 우리가 막 개화되던 20세기 초에 들어온 것으로 사과라는 말 속에는 그대로 서양 문명이 압축된 상징적 이미지가 있다고 언급한다.

그렇게 아담의 사과, 선악과, 파리스의 사과, 뉴턴의 사과, 윌리엄 텔의 사과, 스티브 잡스의 사과, 조니 애플시드의 사과…….



그러다가 이야기는 갑작스레 바나나로 튀고, 기차로 가고, 비행기에 이어 백두산까지 가는 것이다.

정말 이 노래에 나오는 키워드로 할 말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며 읽어나갔는데,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감탄하며 읽어나갔다.

또한 그 의미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며 마음이 뭉클했다.

전부 남의 것인데 마지막 결론은 백두산이에요.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우리 거예요. 전부 남의 건데 우리 것 백두산으로 끝나지요. 그 노래가 끝나면 전혀 다른 노래가 뒤에 이어져요.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현제명 작곡의 다른 노래가 이어져요. 반도. 백두산. 삼천리. 이 가사를 읽어보면 빼앗겼던 땅, 그 땅에서 우리는 외국 물건만 쫓아다니면서 옛날 거 우리 거 다 잊어버리고 그것이 살길이라고 개화 100년을 열심히 뛰었어요. 남의 뒤통수만 보고 뛰었어요. 서양 사람들 뒤통수만 보고 뛰다가, 일본 사람들 뒤통수만 보고 뛰다가, 중국 사람들 뒤통수만 보고 뛰다가 이제 우리가 선두에 섰어요. 선두에 서면 뒤통수가 보일까요? 계속 뒤통수를 보고 따라갈 거예요? 백두산부터는 우리가 다섯 개의 키워드가 아닌 새로운 키워드를 만들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시대가 온 거예요. (65쪽)

그동안 우리는 시선을 바깥으로만 바라보면서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잊고 살았다. 그래서 새로운 키워드 이야기 나오면서 더 신나게 읽어나갔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듣는 느낌으로 읽어나가게 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시작할 때도 끝날 때도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잘 있어라, 하는 '잘'은 디지로그의 생명자본, 눈물 한 방울입니다. 이걸 여러분에게 남겨놓고 가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 가, 하고 손 흔들 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잘 있어, 틀림없이 너희들은 잘 있을거야, 잘 있어, 하고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별이 끝이 아니고 잘 있어, 잘 가, 라는 말이 마지막 인사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서로 헤어지는 인사말 속에 잘 있어, 잘 가, 라고 서로 웃으면서, 그리고 잘 가기를 원하고 잘 있기를 원하는 서로의 공감 속에서 죽음도 생명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142쪽)

이어령 선생님은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키워드로 통찰해냈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어령 선생님의 혜안에 다시 한번 놀란다.

일단 펼쳐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책이니,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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