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임진왜란에 관한 뼈아픈 반성의 기록 클래식 아고라 1
류성룡 지음, 장준호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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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클래식 아고라 제1권 『징비록』이다. 지성의 광장, 클래식 아고라는 흥미진진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새로운 품격의 고전 시리즈를 표방한다. 젊은 학자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고전이라고 하여 더욱 관심이 간다.

그 시작으로 『징비록』이 문을 열었다.

임진왜란의 냉철한 자기반성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코로나19 이후 재편되는 세계질서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길은 무엇인가? 400여 년 전 저술이 오늘날 신냉전으로 치닫는 동북아 3국의 생존전략을 제시한다! (책 띠지 중에서)



『징비록』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서애 유성룡이 제2의 임진왜란을 경계하며 후대에 남긴 것이다.

자서에 보면 '『시경』에 이르기를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경계하여 뒤의 근심거리가 없도록 조심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 (9쪽)'라고 하면서 『징비록』 저술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살면서 천재지변이든 인재든 어떤 큰일이 일어났을 때 협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오히려 일처리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또다시 반복되곤 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기에 경계하는 마음에서 유성룡이 징비록을 쓴 것이니 이를 읽고 마음에 새겨볼 일이다.



유성룡은 듣고 보고 겪은 것들을 임진년(1952)부터 무술년(1598)에 이르기까지 대략 기술했다고 한다. 그 뒤에 장계, 소차, 문이 및 잡록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일러두기에 보면 이 번역서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권본 『징비록』을 저본으로 하되, 16권본 『징비록』과 비교·대조하여 번역했다고 한다.

『징비록』은 강목체 역사서인데, 강이란 시간 순서에 근거하여 사실의 대강을 나타낸 것으로 글의 제목 역할을 하고, 목은 강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어서, 본 번역서에서는 강목체 사서인 『징비록』의 특징을 부각하여 강에 해당하는 기사는 볼드체로 처리했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징비록』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유성룡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후에 1590년 통신사로 갔던 조목·김성일과 동문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서인이 아닌 이산해와 같은 동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계기로 강경파인 아계 이산해, 정인홍 등과 결별하고 남인을 형성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을 천거하여 선조로 하여금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도록 하였으며 이순신으로 하여금 임진왜란 당시 열세였던 조선의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공을 세웠고, 임진왜란에 4도 도제찰사, 영의정으로 어려운 조선 조정을 총 지휘하였다. 정인홍, 이이첨 등 북인의 상소로 인해 노량해전이 벌어진 날 영의정에서 관직삭탈하게 된다. 안동으로 내려가 선조의 부름에도 올라가지 않고 임진왜란 때 겪은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했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은 『징비록』권1, 『징비록』권2, 녹후잡기, 해설의 순서로 전개된다. 『징비록』권1에는 자서, 제1장 '전란 전 대일관계', 제2장 '전란대비책', 제3장 '임진왜란의 발발과 초기 전투 상황', 제4장 '충주의 패전과 파천 논의', 제5장 '선조의 몽진과 구원군의 요청', 『징비록』권2에는 제6장 '의병의 활동과 명군의 평양성 탈환', 제7장 '도성 수복과 백성들의 동향', 제8장 '일본군의 재침과 정유재란의 전개', 제9장 '이순신의 재기용과 명량해전', 제10장 '일본군의 퇴각과 노량해전', 제11장 '이순신의 인품'이 수록되어 있다.

녹후잡기에는 제1장 '전란 발생의 전조', 제2장 '전시 중 각종 대비책', 제3장 '김성일의 죽음과 제2차 진주성 전투', 제4장 '정유재란', 제5장 '심유경', 해설에는 『징비록』은 어떤 책인가, 중용 속에서 대안을 찾은 재상 유성룡, 임진왜란 당시 동아시아 3국 정세, 왜 지금 『징비록』일까 등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징비록』이란 무엇인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에 이따금 전란 전에 있었던 일도 기록한 것은 난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서다. 아아, 임진년의 전화는 참혹했다. 수십 일 동안에 삼도(한양·개성·평양)를 지키지 못했고, 조선 팔도가 무너졌으며, 임금은 피난을 떠나셨다. 오늘이 있는 것은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대 임금들의 어질고 두터운 은덕이 깊게 백성들의 마음을 굳게 연결시켜, 백성들이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임금께서 명나라를 섬기는 정성이 황제(명 신종)를 감동시켜 구원군이 여러 차례 파견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위태로웠을 것이다. (9쪽, 자서 중에서)

이 책은 유성룡이 들려주는 그 당시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을 읽어보면 '고전이 의외로 읽을 만하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중역과 낡은 번역으로 점철된 고전이 아니라 젊은 학자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고전 시리즈여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내용이 담겨 있고 이렇게 읽을 만한 책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사람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막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그런 건 아닐지라도, 읽는 글을 또다시 다듬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면 읽는 족족 의미가 와닿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게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은 『징비록』을 읽어보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할 때이니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쯤 『징비록』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 중이라면 이번 기회에 이 책을 통해서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무엇보다 이 책을 더 와닿게 하는 것은 꽤나 두툼하고 구체적으로 해설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였다. 단순히 옛 기록을 해석하는 차원이 아니라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또한 2007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유성룡 특별전이 열렸는데, 그 해는 서애 유성룡의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였으며, 특별전의 부제는 '하늘이 내린 재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604년 유성룡이 『징비록』을 저술할 무렵 그는 일본과 화친을 주장해서 나라를 그르친 간사한 인간이라고 평가받았다는 것이다. 『징비록』이 간행되었을 때 서인들은 '자신의 공로만을 드러낸 책'이라고 책의 의미를 평가절하했다고 한다. 그런데 400주년인 2007년에 그는 '하늘이 내린 재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번역 · 해설한 젊은 사학자 장준호는 그 시대의 산물인 유성룡과 『징비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를 둘러싼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독자들이 유성룡을 '불편부당한', '하늘이 내린' 등의 수식어를 붙인 채 박제된 위인으로서 이해하기보다는 '유성룡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갖고 탐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술했다고 한다.

이 해설을 통해 『징비록』의 배경지식을 알고 이해의 폭을 넓혀본다. 특히 '왜 지금 『징비록』일까'라는 결어를 통해 『징비록』의 의미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들어본다. 이 해설이 있기에 『징비록』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그동안 『징비록』은 만화로도 책으로도 드라마로도 접했다.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 알고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에 읽어보았는데, 예전보다 지금이 더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다방면으로 살펴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번역과 해설이 『징비록』의 이해를 풍부하게 해주어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징비록』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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