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
민이안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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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제1회 SF 공모전 대상작이다.

제목이 무서워서 쳐다보고 벌벌 떨고 그러길 며칠, 하지만 그런 내용은 아니었으니 제목만 보고 무서워하지 말 것.

아니, 오히려 '으흐흐흐~~' 하고 달려드는 공포소설이 아니어서 더욱 무서웠다고 할까.

어떤 내용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민이안. 저자 소개가 인상적이다.

사람은 성장 시기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앞구르기, 뒷구르기, 옆돌기를 매일 하는 시기.

공룡의 이름과 특성을 읊고 다니는 시기.

별의 형태와 은하들의 거리를 외우고 다니는 시기.

나물 반찬을 싫어하는 시기.

체육 활동이 급격히 줄어드는 시기.

록이야 말로 진정한 음악이라고 믿는 시기.

영원의 시작과 시공의 끝에 대해 (답 없는) 고민을 하는 시기.

삶에 떠밀려 꿈을 잊고 사는 시기.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 돌아다니는 시기.

코어를 목놓아 부르짖으며 근육 예찬론자가 되는 시기.

새로운 나물 무침 레시피를 찾는 시기.

따뜻한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받는 시기.

상상을 글자로 옮겨보는 시기.

마침 상상을 글자로 옮겨보는 시기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 (책날개 중에서)



뽀얗고 ,굴곡진, 어떤 덩어리.

눈을 떴을 때, 정체불명의 물체가 코앞에 놓여 있었다. 색깔이나 표면의 느낌으로 보아 지점토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어째서 이런 물체가 내 침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 술을 진탕 마셨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름이 끊기지 않고서야 이런 걸 기억 못 할 리는 없을 텐데.

"뭐야. 이거…." (5쪽)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인공이 깨어나는 장면이다.

얼핏 인간과 로봇이라는 SF소설이라고 알고 읽어서 그조차도 스포일러 같아서 안타까운 것이 이렇게 시작되는 첫 장면이었다.

같은 사람이 주인공일 때 이 장면은 너무 흔하고 사소한 시작이겠지만, 로봇이라면 엄청 충격적인 시작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런 생각도 하며 깨어나는 일도 있다.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었다, 하는 바로 그거. 소설이나 영화의 도입부로 많이 쓰이는 장면. 이렇게 낯선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니 괜스레 내가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25쪽)

그리고 이 책은 충격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는데…….

상상도 못해보았다. 나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은 소설을 읽으며 얼핏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두개골을 열고 뇌를 만져가며 고치는 것 말이다.

폐기 더미 사이에서 발견된 파란 피 타입 로봇인 주인공은 진짜 메모리 데이터만 이상한 건지, 아닌지, 혼란스러운데…….

점점 작가가 들려주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너도…. 로봇이야?"

조심스러운 물음에 녀석이 코웃음 치듯 되물었다.

"그럼 넌 인간이라도 돼?"

"응." (32쪽)

이럴 수도 있는 세상이 오긴 올까. 그렇게 먼 미래의 일인 것만은 아닌 것인가.

어쨌든 상상으로 그런 세상을 먼저 만나본다. 그게 소설의 힘이다.



사실 이 소설을 조금 더 알고 읽는 것이 오히려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

심사평 첫 줄을 읽어보면 이 책의 매력이 더욱 와닿는다.

민이안 작가의 공상과학소설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는 한때 인간이었던 안드로이드 '풀벌레' 자신이 어떻게 로봇이 되었는가를 추적해나가는 작품입니다. 그는 멸종된 인류 냉동 보관소에서 극적으로 재성성에 성공한 유일한 존재인데 이미 로봇의 명령어가 이식된 상태였습니다. 냉동 보관소는 그의 인간 무덤이자 로봇으로 부활한 공간입니다. 이런 이력을 가진 신생 안드로이드 로봇은, 자유와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로봇 세계의 악마 같은 현실을 두려워합니다. '반인반안'의 로봇 인간을 탐구하기 위해서 작가는 이 작품에 로드 무비 형식을 끌어들입니다. 이것은 주인공이 여행하는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다루는 방식인데, 이런 사건을 통해 어떤 자각과 의미를 터득하게 됩니다. (167~168쪽)

그랬다. 이 책에 몰입하게 된 것은 그동안 인간이면 인간, 로봇이면 로봇, 혹은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로봇 정도를 접해왔다면, 이 책에서는 그 생각을 뛰어넘게 만드는 데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지?'로 시작했다가 '어, 어?, 어!' 하면서 시선을 집중하게 된 것이다.

과연 그는 누구이고 어떻게 된 일인지,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여정이 획기적이어서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나가게 되는 책이다. 독자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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