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얗고 ,굴곡진, 어떤 덩어리.
눈을 떴을 때, 정체불명의 물체가 코앞에 놓여 있었다. 색깔이나 표면의 느낌으로 보아 지점토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어째서 이런 물체가 내 침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 술을 진탕 마셨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름이 끊기지 않고서야 이런 걸 기억 못 할 리는 없을 텐데.
"뭐야. 이거…." (5쪽)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인공이 깨어나는 장면이다.
얼핏 인간과 로봇이라는 SF소설이라고 알고 읽어서 그조차도 스포일러 같아서 안타까운 것이 이렇게 시작되는 첫 장면이었다.
같은 사람이 주인공일 때 이 장면은 너무 흔하고 사소한 시작이겠지만, 로봇이라면 엄청 충격적인 시작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런 생각도 하며 깨어나는 일도 있다.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었다, 하는 바로 그거. 소설이나 영화의 도입부로 많이 쓰이는 장면. 이렇게 낯선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니 괜스레 내가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25쪽)
그리고 이 책은 충격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는데…….
상상도 못해보았다. 나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은 소설을 읽으며 얼핏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두개골을 열고 뇌를 만져가며 고치는 것 말이다.
폐기 더미 사이에서 발견된 파란 피 타입 로봇인 주인공은 진짜 메모리 데이터만 이상한 건지, 아닌지, 혼란스러운데…….
점점 작가가 들려주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너도…. 로봇이야?"
조심스러운 물음에 녀석이 코웃음 치듯 되물었다.
"그럼 넌 인간이라도 돼?"
"응." (32쪽)
이럴 수도 있는 세상이 오긴 올까. 그렇게 먼 미래의 일인 것만은 아닌 것인가.
어쨌든 상상으로 그런 세상을 먼저 만나본다. 그게 소설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