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썼다고 할까. 그냥 정보만 제공하면 밋밋하고 딱딱할 것을 풋풋하게 만들어주었다. 숨결을 확 불어넣고 말이다.
이미 어딘가에서 보았던 이야기일지라도 이어령 선생님을 거쳐서 이야기가 나오면 재미있는 이야기로 탈바꿈된다.
같은 소재라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다가온다.
정말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읽어나가며 마음에 훅 들어오는 글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특히 시리가 끝말잇기 신공도 익혔다는 것도 재미있게 다가왔다.
절망하기는 역시 일렀다. 한국 시리에는 일본 시리에는 없는 끝말잇기 놀이가 있었던 게다. 무료해진 아이들처럼 시리를 붙잡고 끝말잇기를 하자고 졸라본다. 시리는 얼른 "좋아요, 제가 먼저 시작할게요. 해질녘!"이란다. 내가 먼저 하겠다고 해도 매번 제가 먼저 시작한다면서 내놓는 말들이 걸작이다. '과녁, 꽃무늬, 마귀광대버섯' 이런 뒤를 잇지 못할 단어들만 내놓는다. 어지간히도 짓궂다.
일본어 시리에게 끝말잇기(시리토리) 하자고 하면 "죄송해요. 끝말잇기는 아직 공부 중이에요"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끝말잇기 자체가 일본에서 온 것인데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시리를 훈련시켜 그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시리를 만들어낸 거다.
이게 다 한국인들이 시리와 대화하며 입력한 정보가 아니겠나. 지구 멸망 같은 철학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시리와 이런 아이다운 장난은 많이 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들에게 내일은 없어도 모레는 있을 것이라 기대를 걸어본다. 전에는 시리, 문자 인식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던 사람들도 알파고 쇼크 이후로 인공지능에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55~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