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을 책이 쌓여있다고 해도 순서 새치기하여 제일 먼저 읽고 싶은 책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책이 그랬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재미있고, 휴식 같고, 대단히 방대한 지적 향연에 감탄하고…….

책을 펼쳐들면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지듯, 끊임없이 이야기가 줄줄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이어령 저서 중 특히 애착을 갖고 0순위 중의 0순위로 챙겨보는 책이 있으니, 바로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다.

이 책이 바로 이어령 지적 대장정의 종착지 '한국인이야기' 시리즈 중 세 번째 '창조의 아이콘, AI를 말하다'이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 궁금했다.

이번 주제는 인공지능이다. 이 책 《한국인 이야기: 너 어떻게 살래》를 읽으며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 책의 저자는 이어령. 1934년 충남 온양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석좌교수,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반평생을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석좌교수, 석학교수를 지냈다.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으로 활약했으며 그는 60년 이상 평론과 소설, 희곡, 에세이, 시. 문화 비평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글을 써왔다. 길고 길었던 지적 여정의 대미를 장식할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해 왔으며, '한국인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두 시리즈의 방대한 원고를 머리맡에 두고 영면에 들었다. 현재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중 《너 어디에서 왔니》와 《너 누구니》가 출간되었으며, 앞으로도 출간이 이어질 예정이다.



요즘 AI가 대세인가 보다. 그런데 이미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방대한 원고를 남기셨다니, 신기하고 대단하다.

일단 이 책을 펼쳐들면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개를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는 이야기로 시작하며 시선을 모은다.

세상이 골백번 변해도 한국인에게는 꼬부랑 고개, 아리랑 고개 같은 이야기의 피가 가슴속에 흐르는 이유입니다. 천하루 밤을 지새우면 아라비아의 밤과 그 많던 이야기는 언젠가 끝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꼬부랑 할머니의 열두 고개는 끝이 없습니다. 밤마다 이불을 펴고 덮어주 듯이 아이들의 잠자리에서 끝없이 되풀이될 것입니다. 그것은 망각이며 시작입니다. (11쪽)

옛날 이야기를 따라가는 아이의 심정으로 호기심 어린 눈빛 가득 발사하며 이 책을 읽어나간다.

그렇게 '한국인 이야기' 꼬부랑 열두 고개를 넘어가본다.



진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썼다고 할까. 그냥 정보만 제공하면 밋밋하고 딱딱할 것을 풋풋하게 만들어주었다. 숨결을 확 불어넣고 말이다.

이미 어딘가에서 보았던 이야기일지라도 이어령 선생님을 거쳐서 이야기가 나오면 재미있는 이야기로 탈바꿈된다.

같은 소재라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다가온다.

정말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읽어나가며 마음에 훅 들어오는 글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특히 시리가 끝말잇기 신공도 익혔다는 것도 재미있게 다가왔다.

절망하기는 역시 일렀다. 한국 시리에는 일본 시리에는 없는 끝말잇기 놀이가 있었던 게다. 무료해진 아이들처럼 시리를 붙잡고 끝말잇기를 하자고 졸라본다. 시리는 얼른 "좋아요, 제가 먼저 시작할게요. 해질녘!"이란다. 내가 먼저 하겠다고 해도 매번 제가 먼저 시작한다면서 내놓는 말들이 걸작이다. '과녁, 꽃무늬, 마귀광대버섯' 이런 뒤를 잇지 못할 단어들만 내놓는다. 어지간히도 짓궂다.

일본어 시리에게 끝말잇기(시리토리) 하자고 하면 "죄송해요. 끝말잇기는 아직 공부 중이에요"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끝말잇기 자체가 일본에서 온 것인데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시리를 훈련시켜 그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시리를 만들어낸 거다.

이게 다 한국인들이 시리와 대화하며 입력한 정보가 아니겠나. 지구 멸망 같은 철학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시리와 이런 아이다운 장난은 많이 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들에게 내일은 없어도 모레는 있을 것이라 기대를 걸어본다. 전에는 시리, 문자 인식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던 사람들도 알파고 쇼크 이후로 인공지능에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55~56쪽)



알파고 이야기를 재미나게 끌고 가며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한다. 특히 우리는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을 벌였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으니, 더욱 생생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서 바둑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안목을 키워주니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나간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분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부분은 전혀 의미가 없다. 부분을 다 합쳐놓아도 홀리즘, 전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양자역학과 같이 부분과 부분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 21세기 패러다임 시프트다. 그게 바로 바둑이다. (110쪽)



서양의 기계론적인 세계관으로는 풀 수 없는

인간과 인공 사이의 고차원방정식

우리의 인(仁) 사상과 생명 의식에 해법이 있다! (책 뒤표지 중에서)

AI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의 인(仁) 사상까지 연계시키는 것에 감탄했다. 지금껏 생각지 못한 부분을 연결해서 의미를 부각시켜주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이게 인이라는 거다. 네가 가졌기 때문에 내가 가질 수 있고, 내가 가짐으로써 네가 쓸 수 있다. 네가 걸 땐 내 것도 네 것이지만, 내가 걸 땐 네 것도 내 것이다. '인'은 바로 정보화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인터'의 기술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오늘날의 미디어 시대, 정보화시대는 산업주의와 다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어질 인의 시대! 인터의 시대!'인 거다. 즉, 네가 가져야 내가 갖고, 네가 기뻐야 내가 기쁜 시대다. 독점이 아닌 나눔을 토대로 한 미디어의 시대, 인터넷의 시대, 인터페이스의 시대, 상호작용의 시대다. 정보사회는 상호의 소통성, 커뮤니케이션을 최대의 가치로들 알고 있지만, 아니다. 인간의 소유 형태를 혁명적으로 바꾼 것이 핵심이다. (353~354쪽)

이어령 선생님의 책 중에 한국인 이야기는 특히 재미있다. 일단 펼쳐들면 솔깃하게 만드는 뛰어난 힘을 느끼게 해준다.

짤막하게 끊어서 볼 수도 있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어나갈 수도 있다.

세대를 아우르며 긍지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어서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