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행성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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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고양이가 있다. 생긴 것도 이 책 표지 모델 고양이 비스므레 하게 생겼다.

잘 하면 곧 말도 하겠고, 꿈을 좀 크게 가지면 지구 정복을 위해 앞장서는 고양이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나의 상상력은 거기에서 그치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문명 정도는 건설해 주고 이번에는 이 행성의 운명을 건 최후의 결전을 펼치는 정도로 진행된다.

인류 문명이 자랑하던 대도시 뉴욕은 폐허가 되었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고층 빌딩에 숨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압도적인 쥐들의 공격과, 그에 맞서는 고양이들.

과연 지구를 지배하는 동물은 누가 될 것인가?

이 행성의 운명을 건 최후의 결전이 시작된다! (책 뒤표지 중에서)

고양이 3부작의 마무리가 될 이 소설이 궁금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행성』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베르베르는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타고난 글쟁이다.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하고 국립 언론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과학 잡지에 개미에 관한 글을 발표해 오다가, 드디어 1991년 120여 차례 개작을 거친 『개미』를 출간,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 이후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영계 탐사단을 소재로 한 『타나토노트』, 독특한 개성으로 세계를 빚어내는 신들의 이야기 『신』, 제2의 지구를 찾아 떠난 인류의 모험 『파피용』,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인간을 상대화하는 『고양이』, 새로운 시각과 기발한 상상력이 빛나는 단편집 『나무』, 사고를 전복시키는 놀라운 지식의 향연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써냈다. 그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천3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책날개 중에서)



『고양이』, 『문명』에 이어서 이번에도 고양이 바스테트가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그런데 반가움은 잠시, 역시 첫 장면부터 고양이 바스테트의 도도하고 앙칼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나 참, 기가 차서 야옹 소리가 안 나오네. 이 꼴을 보려고 그 고생을 하며 대서양을 건너왔단 말인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꼬리 끝이 파르르 떨리더니 소름이 등줄기를 훑고 정수리까지 전해진다.

두 눈의 동공이 확대된다.

두 귀가 바짝 선다.

털이 곤두선다.

나도 모르게 턱을 앙다물었는지 빠드득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웬만한 상대한테는 주눅 들지 않는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13쪽)

왜 이리 심기가 불편한가 보았더니, 오른쪽을 봐도 왼쪽을 봐도 망할 놈의 갈색 쥐 투성이라는 것이다.

바스테트와 샴고양이 피타고라스, 아들 안젤로, 집사인 나탈리 등 간단히 주변인물을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문득 인간이란 존재의 문제가 뭔지 알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행복보다 불행을 위해 쓴다. 인간들은 신이라는 것을 상상해 만들어 내고 그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서슴없이 죽인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바람을 피운다고 상상하고 그 사람과 헤어진다. (1권 124쪽)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에 대해 날카롭게 관찰하여 표현했다. 읽다 보면 내가 고양이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듯 생생하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는 당연한 듯 벌어지는 일들이 다른 종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어이없고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다른 존재의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소설 속 장치인데, 이번에는 아예 종을 달리하여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니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단순히 고양이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풀어내는 역사 지식이 넓고 깊어서 이 또한 흥미를 유발해 주었다.

또한 이 책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 군데군데 수록되어 있어서 이 부분에서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중 흥미로웠던 「인간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언급해 보아야겠다.

인류가 갑자기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0일 뒤: 먹이를 먹지 못한 가축들이 굶어 죽기 시작한다.

1개월 뒤: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 시스템이 가동하지 않아 원자로의 노심 용융이 일어나면 체르노빌 사태 같은 대규모 폭발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방사능 누출로 인해 취약한 생물 종부터 서서히 죽게 된다.

6개월 뒤: 위성들이 궤도를 이탈해 추락하기 시작한다.

1년 뒤: 온대 지방에서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 주택, 빌딩, 건축물, 도로를 뒤덮는다. 정원과 들판이 잡초로 뒤덮인다. 다시 울창해진 숲이 이산화탄소를 빠르게 흡수한다.

5년 뒤: 지구의 기온이 낮아지고 겨울이 이전보다 더 추워진다. 유럽에서 사냥 때문에 개체 수가 감소했던 토끼, 사슴, 여우, 늑대, 멧돼지, 곰 같은 동물 종이 다시 번성한다. 생태계 전반에서 생물 다양성이 증가한다.

30년 뒤: 건물들이 무너지고 폐허가 된 터는 동물들의 서식지가 된다. 바다에서는 산호초가 다시 만들어지고 남획으로 고갈되었던 참치, 상어, 고래, 돌고래 등이 다시 번식하기 시작한다. 반면에 해파리의 개체 수는 줄어들게 된다.

2백 년 뒤: 공기 중에서 인간이 배출했던 이산화탄소가 완전히 사라진다. 댐이 없어져 강이 원래의 물길을 따라 다시 흐를 수 있게 된다.

3백 년 뒤: 현수교 같은 대형 강철 구조물들이 녹이 슬어 결국 붕괴하고 만다. 에펠탑도 예외가 아니다.

5백 년 뒤: 숲에 서식하는 동물상이 1만 년 전의 모습을 되찾는다.

2만 5천 년 뒤: 핵폐기물이 비활성화되기 시작한다.

5천만 년 뒤: 석재 건축물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1억 년 뒤: 플라스틱 폐기물마저 사라져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14권

(145~147쪽)



『행성』은 스페인 독감 이후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바이러스가 출현한 뒤인 2020년 가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작가가 집필을 마무리했을 그해 봄이 우리가 막 터널로 들어섰을 때여서 그랬는지 작품 곳곳에 바이러스의 흔적이 깊이 남아 있다. 2016년과 2019년에 각각 발표된 고양이 3부작의 『고양이』와 『문명』에 비해 대멸망 이후의 세계는 한층 더 폭력적으로 그려지고 세상을 점령한 쥐 떼와 싸우기 위해 주인공들이 고민하는 해법 역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제시된다. (307쪽)

바스테트가 주장한 것은 '소통'이었다. 이 행성이 평화로운 행성이 되었으면 하는 것인데, 그 의견에 동조하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번에 읽은 『행성』은 고양이 3부작의 마지막이다. 그래서 그런지 각종 흥미로운 소재가 아낌없이 총망라되어 있다. 지금껏 읽은 고양이 시리즈 중에 제일 스펙터클하다.

아낌없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지식과 지혜를 총출동시켜 쏟아부은 역작인 것 같다.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이 실질적으로 믿음이 가서, 내가 한 마리 고양이가 된 듯 읽어나간 이 시간이 멋진 체험을 한 듯하다. 세계를 속속들이 들여다본 것 같아서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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