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은밀한 감정 - Les émotions cachées des plantes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백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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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왜 이걸 지금껏 몰랐지?'라며 경이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특히 식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보면 무언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자연 에세이다. 일단 식물이 다르게 보인다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주변 식물들을 다르게 볼 거라고 생각하니 꼭 읽어보고 싶었다.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책 띠지 중에서)

이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여 이 책 『식물의 은밀한 감정』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1960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다. 불법 이민자와 추방 문제를 풍자적이고 우화적인 기법으로 다룬 『편도승차권』으로 공쿠르상(1994)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인정받았으며 『사랑의 물고기』로 로제 니미에상(1984), 『유령의 바캉스』로 구텐베르크상(1986), 『반기숙생』으로 페미나 에브도상(1999), 『양아버지』로 마르셀 파뇰상(2007), 『우리 인생의 여자』로 메사르디에르상(2013)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림은 황금비의 작품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현재 미국 뉴욕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 재학 중이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식물들의 엽서가 제공된다. 흔히 볼 수 있는 것부터 낯선 것까지 다양하게 접해볼 수 있다.



이 책은 총 15장으로 구성된다. 1장 '땅 고르기', 2장 '식물의 상상력', 3장 '위험에 대한 지각', 4장 '유혹에서 술책까지', 5장 '식물은 칭찬에 민감할까?', 6장 '식물과 인간의 소통', 7장 '공감부터 연민까지', 8장 '연대의 이점', 9장 '식물의 언어', 10장 '식물과 음악', 11장 '식물의 슬픔', 12장 '식물, 버섯 또는 곰팡이?', 13장 '식물은 어루만지는 걸 좋아할까?', 14장 '식물과 죽음', 15장 '식물과 미래'로 나뉜다. 옮긴이의 말로 마무리된다.

믿기 힘들겠지만 식물은 느끼고 실행할 줄 안다. 곧 식물의 온갖 감정을 보게 될 것이다. 두려움, 굴욕, 고마움, 창조적 상상, 계략, 유혹, 질투, 대비원칙, 연민, 연대감, 기대감…. 그리고 최근에 입증되었듯이, 식물은 아주 단순한 수단과 더없이 놀라운 방법으로 스스로 느끼는 바를 전할 줄 안다. (15쪽)



이 책의 저자는 소설가다. 보통 식물에 대한 책을 학자들이 쓴 것을 보아서 그런지, 소설가가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라는 점이 처음에는 낯선 느낌이었다.

하지만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어머니가 원예가였으니 어렸을 때부터 식물과 가까이 지내는 환경이었고, 식물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식물에 관해 이야기를 좀 더 섬세하게 스토리텔링을 잘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의 경험 또한 특별해서 읽으면서 기억에 강렬하게 남기도 했다. 그중 한 가지만 언급해 보아야겠다.

우리는 한 그루 나무 때문에 아플 수 있으며, 실제로 나는 그런 경험을 했다. 태풍에 약해진 3백 년 된 나의 배나무는 점점 더 그 가지들이 죽어갔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나무를 보살피며, 아름다움과 역사와 그늘, 나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치유해준 에너지 교류 때문에 내게 나무가 얼마나 꼭 필요한 존재인지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나무는 거의 일정하게 줄곧 시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봄, 나무는 이례적으로 꽃을 피웠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정원사로 일했던 진정한 노목 학자는 나무에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조치에 대해 내게 조언해주곤 했는데, 이 갑작스러운 일시적 호전에 내가 기뻐하는 걸 보고는 슬며시 이런 말로 나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 나무가 이렇게 힘들여 꽃을 피우는 건 곧 죽을 것이기 때문이네."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그는 내 입장으로 바꿔서 설명하려고 애썼다. "만약 자네가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책을 만들어서 살아남을 기회를 늘리려고 작업속도에 박차를 가하지 않겠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의 글쓰기 속도를 보자면 나는 유년기 때부터 임종 상태에 있는 셈이었다. 말하자면 그건 만기일을 예상하고 사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나는 배나무와의 대화를 달리했다. 때가 되면 그렇게 아름답게 꽃을 피운 채 평화로이 떠날 수 있을 테니 서두를 것 없다고 배나무를 안심시켰다. 배나무는 그 후 봄마다 더없이 아름답게 죽음을 준비하며 8년을 더 살았다. (186쪽)

또한 소설가가 식물에 대해 감성적인 글만 들려줄 거라는 선입견은 버리자. 저자는 갖가지 실험에 관해서도 들려준다. 이미 알고 있는 실험이든 그렇지 않든, 실험에 관한 다양한 인용에 그저 흥미로운 시선으로 저자의 이야기에 따라가며 시선집중하게 된다.

지금까지 읽었던 식물 관련 서적과는 또 다르게 작가만의 개성이 있는 식물 책으로 탄생했다. 경이로운 세계로 초대받은 느낌이다.



곳곳에 담겨 있는 식물 그림과 엽서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식물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어서 그런지 더 섬세한 시선이 느껴진다.

특히 요즘 수국의 계절인데, 수국을 직접 보는 것 못지않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그림이어서 더욱 마음을 다해 감상하게 된다.

엽서 자체도 좋은 선물이고, 책 속에서 볼 수 있는 그림 또한 글자 속에서 풍요로운 쉼표를 마련해 준다.



이 책은 우리를 식물의 내밀한 세계로 안내해, 식물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게 해준다. 범인을 지목해 합법적인 증인으로 인정받은 수국, 실험에 몇 번 속고 나서는 의도를 파악하고 예상을 앞질러 덩굴손을 뻗는 꽃시계덩굴, 나뭇잎에 위해를 가할 생각을 품는 순간 즉각 반응을 보이는 드라카이아 등.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담이나 역사적 사건, 과학적 발견이나 일화들은 하나같이 신기하고 경이롭다. 이동의 자유를 포기한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전략들은 놀랍도록 창의적이다. 식물은 눈과 귀와 입이 없어도 지각하고 소통하며, 뇌 없이도 지능적으로 행동한다. 유혹하고, 모방하고, 공격하고, 방어하고, 선택하고, 계산하고, 학습하고, 기억하고, 예견하고, 연대한다. 그러니 식물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난관에 봉착하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낸다. 은밀하고도 치밀하게 화학물질을 배출해 적에게 경고하고, 때로는 독을 품어 포식자를 죽이기도 한다.(207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식물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바깥의 식물들이 달리 보인다. 식물들이 지금껏 조용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그 존재감을 잘 몰랐다면, 이번 기회에 달리 보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식물을 대하는 내 마음을 바꿔주었다. 식물을 대하는 태도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르게 이끌어주었다.

안 그래도 잡초가 무성해졌다며 투덜투덜했는데, 이 마음이 며칠이나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이 땅의 식물들을 바라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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