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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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소설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그만큼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많아서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단지 그 이유에서만 선택한 것은 아니고, 이 책을 읽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김영하 작가의 9년 만의 신작이라는 점에서였다. 짧지만 강렬했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에는 사실 그의 산문으로, 혹은 방송으로 김영하 작가를 접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익숙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라니 궁금하지 않겠는가. 자그마치 9년 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는지 알게 된 후에 더욱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이 소설은 원래 2019년, 한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의 청탁을 받고 집필을 시작하여 2020년 2월에 그 독자들만을 대상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때는 이백 자 원고지 사백이십 매 분량의 짧은 장편이었으나 이 년에 걸친 개작으로 분량이 두 배 정도 늘어났다. 전면적인 개작을 통해 소설의 주제와 톤이 크게 달라졌다. 이 년 전 초고를 쓰던 시절의 가제는 '기계의 시간'이었고, 어쩌면 '작별인사'보다 그게 더 어울리는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기계의 시간'이라는 제목이 이 소설에 맞지 않게 되었다. 지금으로선 '작별인사' 보다 더 맞춤한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제목이 어떤 마력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자기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로 다시 쓰도록 한 것 같은 느낌이다. 탈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야 비로소 애초에 내가 쓰려고 했던 어떤 것이 제대로, 남김 없이 다 흘러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303쪽,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해서, 김영하 장편소설 『작별인사』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김영하. 소설가. 장편소설로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빛의 제국』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소설집으로 『오직 두 사람』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호출』이 있다. 여행에 관한 산문 『여행의 이유』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냈고 산문집으로 『보다』 『말하다』 『읽다』의 합본인 『다다다』 등이 있다. F.스콧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했다. (책날개 중에서)



지금은 혹은 아직은, 기계와 사람의 생김새가 명확히 구분된다. 누가 봐도 이건 기계다, 사람이다, 구분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소설 속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먼 미래다. 휴먼매터스 랩에서 일하는 최진수 박사의 아들 철이는 홈스쿨로 집에서 공부하며 지내는 일상이 무료하다. 집에는 고양이 세 마리가 있는데, 그중 한 마리는 로봇이다. 고양이 로봇과 실제 고양이들이 서로 닮아가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이 좀 답답하게 느껴지던 그날, 바깥 산책을 나갔고 그 모든 게 달라져버렸다.

낯선 두 남자가 나타나서는 자꾸 등록이 되어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휴머노이드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며 낯선 두 남자는 철이를 플라잉캡슐 안으로 던져 넣었고, 그렇게 전혀 낯선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독자도 사색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인류가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이런 의문들을 품어왔다는 것을 고전 SF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가 완벽하게 기계의 흉내를 내고, 그러다 언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69쪽)

인간이 아닐 거라고는 한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철이의 이야기를 보며 그 마음을 따라가본다. 그리고 모험담처럼 이어지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져서 점점 이 책에 빠져든다.



인간과 기계, 거기에 대한 사색은 소설이라는 매체 덕분에 깊고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소설을 통해 작가의 상상력이 발현되어 독자를 더 깊이 있는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러니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에 대한 것과 자신을 인간이라고 철저하게 믿고 있는 AI, 달마라는 재생 휴머노이드와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철학적 질문과 사색이 이 책을 더욱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특히 소설 속 이야기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어서 '헉' 하면서 읽어나갔다. 늘 그렇지만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으로 뻗어나가는 작가의 상상력이 소설을 읽는 맛을 풍부하게 해주며, 나의 생각도 그 너머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어서 소설을 읽은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이분법을 허무는 김영하의 신비로운 지적 모험 (책 뒤표지 중에서)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에는 지금이 아니라 미래 어느 날,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읽어나갔다. 하지만 읽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각양각색의 소재가 차곡차곡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생각보다 더 엄청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고,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모든 혼돈과 마무리,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스토리 자체를 따라가며 읽는 재미는 물론, 읽어나가며 철학적 사색을 함께 할 수 있으니,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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