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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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대한 책이 눈에 띄면 읽어보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이 이제야 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작가도 아니고, 헤르만 헤세라니!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이건 무조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쳐들었다. 그렇게 일단 펼쳐들기만 하면 이 책에서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세계로 안내해 준다.

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길

그대에게 필요한 건 모두 거기에 있지

해와 달과 별

그대가 찾던 빛은

그대 자신 속에 깃들어있으니

그대가 오랫동안 책 속에 파묻혀

구하던 지혜

펼치는 곳마다 환히 빛나니

이제는 그대의 것이리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인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수도원 신학교에서 도망친 뒤 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했으며,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방랑, 자아의 추구, 예술가적 삶은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같은 주요 작품들에 두루 나타나는 헤세 문학의 큰 주제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가는 사춘기의 고통을 묘파하고, 동양사상과 신비주의에 대한 경외감을 삶의 바탕으로 삼았던 헤르만 헤세는 위대한 작가이기 이전에 근면한 독자이며, 욕심 많은 장서가이며, 뛰어난 서평가였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는 책과 문학에 대한 에세이를 모아 엮은 책으로 헤르만 헤세의 애서가이자 탐서라고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책 속에서)



이 책에는 독서에 대하여, 책의 마력, 서재 대청소, 소설 한 권을 읽다가, 애독서, 작가에 대하여, 젊은 작가들에게 띄우는 편지, 글쓰기와 글, 문학과 비평이라는 주제에 대한 메모, 시에 대하여, 언어, 독서와 장서, 글 쓰는 밤, 세계문학 도서관, 책과의 교제, 신사조들에 관한 대화, 예술가와 정신분석, 환상 문학 등이 담겨 있다.



첫 이야기는 좀 셌다. 반성 또 반성한다. 한마디가 마음에 훅 치고 들어온다. 그러면서 독서를 다시 돌아보도록 해준다.

혼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러면서도 앞으로 어떤 독서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길을 안내해준다.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일상을 잊고자 책을 읽어서도 안 된다. 이와는 반대로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우리의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15쪽)

그런데 이 글이 1911년에 쓴 글의 일부다. 1911년이라니! 세월의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지금 현실에도 맞는 이야기이다. 전혀 간극을 느끼지 못하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첫 글부터 나에게 깊은 생각에 잠기도록 한다. 첫 이야기를 보면 아마도 자신의 독서 생활을 뒤돌아보며 반성하고 각성하고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원래 독서를 많이 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그러는 데에는 일상을 잊고자 한 부분도 컸다는 것을 깨닫고는 정신이 번쩍 든다. 이제 한 걸음 나아가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한 독서를 해야 할 것이다.

제자리걸음으로 맴도는 나를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느낌이 든다.

옛사람과 글로 만나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은 아닌데, 이렇게 기회가 닿는 것도 인연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심장을 두드리는 글을 건져냈을 때 전율을 느낀다. 멈춰 선 나를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니 말이다.



<서재 대청소>도 눈앞에 상황이 그려져서 흥미롭게 읽었다. 헤르만 헤세라고 별 수 있겠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나도 지금 서재 정리를 엄두도 못 내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공감하며 읽어나갔다.

엄청난 일거리 때문에 지난 8일 동안 꼼짝을 못 했다. 이사를 앞두고 12년 만에 처음으로 서재를 싹 치우고 짐을 꾸려야 했던 것이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꼬박 바친 중노동에 저녁마다 등허리가 쑤시고 머리가 휑해져, 단순노동 끝에 누릴 수 있는 피로감을 톡톡히 맛보았다. 남들이라면 훨씬 간단하고 수월하게 해치울 일이겠지만 나는 유난히 꼼꼼하게 아주 꼼꼼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수천 권의 책들이야말로 나의 재산목록 1호이기 때문이다. (33쪽)



이 책을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와 한 걸음 가까워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신기하게도 그의 답변은 시대의 간극을 느낄 수 없으니, 책이라는 매개로 어우러져서 그런가 보다.

그냥 생생하게 읽혀서 더욱 흥미롭다.

정말 그 시대 맞나, 요즘 이야기 아닌가 생각되는 문장을 만나면 반갑고 말이다.

물론 진정한 의미에서의 장서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맥주를 마시거나 흥청망청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책에는 그 10분의 1조차도 쓰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수두룩한가 하면, 생각이 좀 구식인 사람들은 책을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호사스럽게 꾸민 방에 꽂아놓고 먼지가 뽀얗도록 놔둔다. (128쪽)

그때도 그랬고, 예전에도 그랬고, 요즘도 그럴 지도…….

또한 꽤나 실용적이고 적용할 만한 비법도 알려주니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중 하나만 언급해보자면 판형에 대한 이야기다.

판형이나 장정에 유의하자. 허풍스러운 거대판형이나 장난감처럼 조그마한 소형판은 모두 실용성이 떨어진다. 책의 분량을 억지로 늘려 손에 들고 읽기가 힘든 지경인 경우도 있다. 특히 부담 없이 즐기고 싶은 시문학 작품이라면, 가볍고 손에 잡기 쉽고 들기 편하며 잘 펼쳐지는지 살피도록 한다. 필요하다면 약간의 비용을 들여 두세 권이나 그 이상으로 나눠 새로 제본하도록 한다. 내 경우를 들자면 그리제바흐가 두꺼운 네 권짜리로 펴낸 호프만 작품집을 한동안 꽂아만 두고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열두 권으로 얇게 분철하고 나서야 손이 갔다.

책마다 특별한 글이나 도안을 넣는다든지 색상과 색지 등을 개인적으로 선택하여 나름대로 개성을 표현하고 최대한 예쁘고 편하고 독특하게 제본을 함으로써 애정과 경의를 표할 수 있다. 책제목을 원하는 활자로 모양을 잡아 표지를 새로 입힐 수도 있다. 고민하고 애정을 쏟아 직접 장정을 다루면서 소장도서 한 권 한 권을 함께 만들어간다. 그리하여 세상의 다른 모든 책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자신만의 책이 탄생한다. (220~221쪽)



책을 통해 스스로를 도야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고자 하는 데는 오직 하나의 원칙과 길이 있다. 그것은 읽는 글에 대한 경의,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이다. (131쪽)

이 책은 헤르만 헤세가 21세기 탐서가들에게 전하는 문학과 책에 대한 경이로운 찬가라고 한다.

이 책을 펼쳐들면 의외로 헤르만 헤세가 요즘 쓴 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요즘의 우리에게도 딱 알맞은 내용이다.

책에 대해 누구보다도 애정 가득한 선배가 후배들에게 신나서 이야기해주는 듯이 느껴지는 그런 책이니, 독서에 대한 책을 읽는다면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도 꼭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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