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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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벼르고 있었다. 표지부터 호기심이 생기고 그 상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척이나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띠지의 말에 마음이 동요했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팝니다.

아픈 마음까지도 매입합니다!" (책 띠지 중에서)

그러고 보면 중고상점의 물건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일 텐데, 이 책에서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과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를 보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이 책 『수상한 중고상점』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미치오 슈스케. 2004년 『등의 눈』으로 제5회 호러서스펜스대상 특별상을 받으며 이듬해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같은 해 발표한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백만 부 이상 판매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07년 『섀도우』로 제7회 본격미스터리대상, 2009년 『까마귀의 엄지』로 제6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2010년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로 오야부하루히코상, 『광매화』로 야마모토슈고로상을 받았다. 나오키상 사상 최초로 5회 연속 노미네이트된 끝에 2011년에는 『달과 게』로 제144회 나오키상을 받았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은 사계절로 구성된다. '봄, 까치로 만든 다리', '여름, 쓰르라미가 우는 강', '가을, 남쪽 인연', '겨울, 귤나무가 자라는 절'로 나뉜다.

도심 변두리를 지키는 작은 중고상점은 올해로 개업한 지 2년, 적자도 2년째.

중고 물건과 잡동사니로 가득한 안쪽 사무소에선 의뢰인이 찾는 물건은 물론, 남모르게 간직했던 사연까지 해결해 주는데……. (책 뒤표지 중에서)

책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건 이 한 문단으로 충분했다. 그 상황만으로도 독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거기에 더하고 더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소설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독자는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여 자신만의 작품으로 완성한다.

그 즐거움을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만들어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중고상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각 계절의 시작 부분은 이 책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계절과 함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각 에피소드 시작 전의 경쾌한 도입부가 마음에 든다.

미니 트럭의 운전석에서 내리자 주차장 한구석에 핀 서향의 달콤새큼한 향기가 풍겨왔다. 아주 맑은 월요일 오후 세 시. 요 한 주 내내 몹시도 추운 날이 계속되었지만 오늘은 푸근하니 따뜻하다. 공기는 티끌 하나 없이 맑고, 나무 우듬지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바람은 부드럽고, 지갑에는 돈이 없다. (9쪽)

미니 트럭의 운전석에서 내리자 옆집 담에서 얼굴을 슬쩍 내민 커다란 해바라기가 해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주변에는 유지매미소리가 울려 퍼지고, 하늘에는 새하얀 적란운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옷깃을 간질이는 바람은 기분이 좋고, 지갑에는 돈이 없다. (73쪽)

미니 트럭의 운전석에서 내리자 요 며칠 사이에 한층 차가워진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해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고, 흐린 날의 습한 공기가 주변을 가득 메웠고, 주차장 구석에서는 무릇이 빨간 꽃을 흔들었다. 그리고 역시 지갑에는 돈이 없었다.(149쪽)

미니 트럭 운전석에서 내리자 정면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코트 등 부분을 두둥실 부풀렸다. 해 질 녘이 되자, 주차장의 무릇꽃은 어느 틈엔가 모습을 감추었다. 숱이 적은 머리카락처럼 듬성듬성 나 있던 잡초들도 전부 시들었고, 공기는 한겨울의 단단함을 머금었으며, 지갑에는 돈이 있다.

있다! (249쪽)



히구라시 마사오는 스물여덟 살, 직원이 총 두 명인 이 가게의 부점장이다. 사찰 오호지의 주지가 억지로 팔아넘긴 오동나무 장롱 한 채를 싣고 왔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팝니다."라는 문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의 매력은 이 책을 읽어나갈 큰 원동력이 된다.

나와 가사사기는 사이타마시의 변두리에 있는 여기 가사사기 중고상점의 다락방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 개업한 지 2년. 동거한 지 2년, 가게의 매출 상태도 2년째 적자를 기록 중이다. (14쪽)

앞부분만 읽어도 대충 상황이 그려진다. 직원이 총 두 명인 가게 가사사기 중고상점에서 벌어질 일들이 궁금해져서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간다.

단순히 중고물품을 사고파는 상황만이 아니라 일종의 탐정소설을 읽는 듯한 이야기가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든다. 이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다음 상황이 어떻게 풀릴 것인지, 궁금한 생각에 계속 책장을 넘긴다.



이 세상은 어처구니없는 착각으로 가득하다고. 다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고 있을 뿐이지. (227쪽)

사건을 풀어가며 전혀 엉뚱한 상황에서 해결되거나, 당연히 그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오해일 수 있다는 그런 모습들을 보며, 이들이 들려주는 말이 우리네 인생살이와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져 생각에 잠긴다.

이 책은 진지하고 심도 깊은 기존 문체와는 다르게 의도적으로 경쾌하게 쓰인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삶의 무게감은 내려놓고 가볍게 힐링의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워낙 세상이 어둡고 무겁고 그러니 그런 일들 털어버리고 소설 속 세상에서 힐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하면 좋겠고, 내 주변에 이 소설 속 인물들 같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좋겠는, 그런 마음으로 말이다.

또한 가사사기의 뛰어난 추리력으로 함께 풀어가는 장면이 기대되기도 하고 흥미로웠다. 등장인물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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