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 이어령 산문집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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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故 이어령 선생님의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그래서 더 관심 있게 보고 있는데, 이 책은 어머니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내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내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책 속에서)

알고 보니 이 책은 2010년에 출간된 책이 재출간되어 나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는 내가 독서에 별다른 뜻이 없었기에 이 책이 나온 것도 모르고 있었나 보다.

어떻든 간에 책과 나의 만남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책을 펼쳐들 때 비로소 성사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이어령 선생님은 내 마음속에 살아계신 듯했다.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듯 이 책을 읽어나간다.

역시 시대의 지성,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 책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나의 서재에는 수천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 권이다. 이 한 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이 나의 어머니이다. 그것은 비유로서의 책이 아니다. 실제로 활자가 찍히고 손에 들어 펴볼 수도 있고 읽고 나면 책꽂이에 꽂아둘 수도 있는 그런 책이다. 나는 글자를 알기 전에 먼저 책을 알았다.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 전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고 계셨고 어느 책들은 소리 내어 읽어주시기도 했다. 특히 감기에 걸려 신열이 높아지는 그런 시간에 어머니는 소설책을 읽어주신다.

『암굴왕』, 『무쇠탈』, 『장발장』, 그리고 이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는 아련한 한약 냄새 속에서 들었다. 겨울에는 지붕 위를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여름에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머니의 하얀 손과 하얀 책의 세계를 방문한다. (19~20쪽)



이어령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에는 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서 들춰보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어령 선생님 어머니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덕분에 나도 그 이야기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나에게는 언제나 어머니의 손에 들려 있던 책 한 권이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근원적인 그 책 한 권이 나를 따라다닌다. 그 환상의 책은 60년 동안에 수천수만의 책이 되었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수십 권의 글을 쓰게 했다.

빈약할망정 내가 매일 퍼내 쓸 수 있는 상상력의 우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자음과 모음을 갈라내 그 무게와 빛을 식별할 줄 아는 언어의 저울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 목소리로서의 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21쪽)



이 책에는 이어령 선생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어린 시절의 회상이 이어진다.

이어령 선생님은 머리말에서 밝히지만, 그동안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만났지만 개인의 신변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사적 체험이면서도 보편적 우주를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적나라하게 회상하며 적어낸 책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 가장 사적인 고백이다.

비록 사적인 고백이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독자는 각자의 어린 시절과 그 시절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접점을 찾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독서의 지평을 넓혀간다.



인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땅파기」.

어린 시절, 미칠 것처럼 심심해서 혼자 쇠꼬챙이를 들고 뒷마당을 후비고 다녔던 생각이 난다고 한다. 물론 거기까지는 그냥 어린아이의 흔한 일상이라고 생각된다면, 그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이다.

쇠꼬챙이를 들고 흙 속에 묻혀 있던 것을 뒤지던 그 날이야말로 내 마음속에 처음으로 '정신의 지질학'이 눈을 뜨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217쪽)

또한 책 읽기는 어렸을 때의 땅파기와 동일한 것이었고, 대학에 들어가고 비평에 눈을 뜨는 순간에도 도서관에서 땅파기를 이어간 것이다. 여기서 땅파기는 모든 문학적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땅속에 묻혀 있다. 비평의 위대함은 바로, 그 불가시적인, 그리고 숨겨진 구조를 파내는 곡괭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은유의 문장을 좋아하는 것도 그것의 의미가 항상 문장의 심층 속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222쪽)



어린 나와 어머니,

내 문학의 깊은 우물물이 되었던 그 기억들에 대하여 (책 뒤표지 중에서)

작가와 그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은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나 보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데, 이어령 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이 책을 읽고 비로소 하나씩 알아가는 듯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어령 선생님의 사적 고백을 통해 보다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난 듯한 느낌이 든다. 여운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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