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축제 -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8020 이어령 명강
이어령 지음 / 사무사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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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를 보고 나는 미키마우스 손가락부터 생각했다. 어떻게 생겼는지, 몇 개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미키마우스는 어릴 때부터 많이 봐왔으면서도 왜 구체적으로 떠올리려니까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인가. 거기에서부터 이 책이 무척 궁금해졌다.

이 책은 2030 젊음에게 바치는 이어령 지성의 빛나는 향연이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띠지에 '20대 젊은 날의 이어령'이라는 설명이 달린 사진이 담겨 있어서 더욱 눈길이 간다.

'8020 이어령 명강 - 생각의 축제'는 사람의 두뇌를 좌뇌, 우뇌로 가르고 어느 한쪽을 판단 기준 삼아 다른 한쪽을 따돌리고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쏠림 사회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실입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의 창살 속에서 자기가 갇힌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무기수들을 해방시켜서 자유로운 초원의 노마드가 되어 맘껏 뛰어놀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겁니다. (책 속에서)

돌아가셔서 이제 책을 볼 수 없는 건가 생각했는데, 오히려 엄청나게 출간되고 있으니, 우리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계신 듯하다.

어쨌든 미키마우스에 대한 궁금증은 일단 한 템포 쉬고, 그리고 옛날이야기보따리를 풀어서 수리술술 들려주는 듯한 기대감은 최대한으로 하면서 이 책 『생각의 축제』를 읽어보게 되었다. 그래도 결국 미키마우스 손가락부터 찾아보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어령.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 20대부터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60권이 넘는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으며,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이야기 속으로 '수의 비극', 첫째 허들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_ 수의 탄생', 둘째 허들 '이름의 세계', 셋째 허들 '숫자와 이름이 혼융하는 세계', 넷째 허들 '0의 발견', 다섯째 허들 '질서와 균형의 숫자 8', 여섯째 허들 '상대성과 관계성의 숫자 2', 일곱째 허들 '8020 이어령 명강', 여덟째 허들 '새 문명의 모델 초합리주의', 숫자의 허들을 넘어 푸른 바다로 '자크 플레베르의 「작문 노트」'의 차례로 진행된다.



이 책은 정해진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공간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오, 그렇네'라며 신기한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야기가 술술 줄줄 이어져서 무엇 하나 언급하기에 정말 길다. 그런데 그 길이가 하나도 길게 느껴지지 않으면서 '오~오~오~' 하면서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쳐야 할 시험은 달라요. 연필이 아니라 자유롭게 머리를 굴려야지요. 독을 독으로 없애고 열을 열로 다스리듯이 시험으로 시험지옥을 없애는 것이지요. 공부를 하지 않고도 풀 수 있는 시험문제라는 겁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바로 "'8020 이어령 명강 - 생각의 축제'에는 '0'이 몇 개 있는가" 같은 겁니다. 유치원 아이들도 풀 수 있는 문제죠. 누가 보아도 8020에는 0이 2개 있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그렇게 대답하겠지요. 그런데 맞나요? 정말 0이 2개 있어요? 한 번 더 잘 보세요. 아라비아숫자의 8자에도 분명 0 모양이 둘이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0은 4개라야 맞겠지요. 하지만 80에 20을 더하면 100이 되니까 8020에는 6개의 0이 숨어 있는 셈이지요. 어때요. 0이 여섯이면 자릿수로 10만을 나타내는 것이니까 삽시간에 0은 10만대로 늘어나게 되는 거죠. 이런 것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꽃에서 천국을 보는 힘이지요. 그러나 상상력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픕니다. 끝이 없어요. 이번에는 8자를 옆으로 눕혀보세요. 8자가 무한대의 기호로 뜹니다. 갑자기 0은 은하수처럼 빛나면서 무한대의 수로 돌변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8의 아라비아숫자는 안이 바깥이 되고 바깥이 안으로 바뀌는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리사이클의 아이콘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0은 춤을 추고 마술사의 검은 보자기처럼 무한한 둥근 원들을 뽑아냅니다.

그런데 아직도 끝난 게 아닙니다. 0이라고 하면 숫자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한글의 글자에도 0자가 있지 않습니까. '8020 이어령 명강' 글자마다 0이 한 개씩 들어있으니 말예요.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0만 쳐도 한눈에 9개가 나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시험문제를 풀어가는 동안에 지금까지 정지해 있던 선풍기에 스위치를 켠 것처럼 상상력이나 창조력의 날개가 돌아가면서 시원한 바람이 일기 시작할 겁니다. (5~7쪽)

결국 먼저 찾아서 읽어본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나는 먼저 이 부분부터 읽었지만, 그래도 다른 독자들은 순서대로 읽어보며 그 의미를 파악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사실 이게 궁금한 건 나뿐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펼쳐들면 신나는 경우가 있다.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고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짚어주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경우 말이다. 이 책이 그렇다. 특히 이야기 하나하나가 새롭고 새록새록 내 마음에 들어온다.

지금도 살아계시며 어디에선가 강의를 해주시는 듯한 목소리를 이 책에서 들을 수 있다. 세대불문,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며 수의 세계에 초대받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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