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은 파란색으로 기억된다 - 예술과 영감 사이의 23가지 단상
이묵돌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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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감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감에 대해서는 일반인으로서 로망이 있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져들게 된다. 언급해 보자면, 예술가들은 "오, 나 영감 받았어"라면서 갑자기 일필휘지로 작품을 뚝딱 만들어내고 그러는 장면은 천재 예술가라면 능히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해도 적어도 천재 예술가라면 그런 식으로 뚝딱 뚝딱 길이 남을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내게 있어 영감이란 번개처럼 '쾅'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것이 아니라 -이건 상상해보면 좀 아프다- 스웨터를 입고 벗을 때 나오는 전기 따위로 전지를 충전하는 일에 가깝다. 언젠가 하루키가 언급했듯 '서랍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 꺼내쓰는 것'이다. 더구나 언제 어디서 받은 영감이 어떤 글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그 시점에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짧게는 몇 주나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그러고 보니 그땐 그랬군' 하고 문뜩 떠오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부류의 영감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느낀 영감 비스무리한 것들을 글로 정리해봐도 꽤 재미있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10~11쪽)

이 책 《천재들은 파란색으로 기억된다》를 읽으며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함을 엇비슷한 눈높이로 마주하는 법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이묵돌. 이씨 성은 본관이 영천인 어머니의 성을, 묵돌은 흉노족 족장의 이름을 땄다. 굳이 그 의미를 찾아보자면 몽골말로 '용기 있는 자' 정도가 된다. 다수의 소설, 시집, 수필집 등을 썼다. (책날개 발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 보고 기억하는 것들, 더 잘 알고 싶은 것 -에 대해 조금씩 기록해놓을 작정으로 짧은 글을 정리해 올리기 시작했고, 흥미로운 인물 23인을 테마로 삼아 기묘한 기전체 스타일의 책을 내게 된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곳에 수록된 글들의 원제목은 《영원에 관하여》였다. 여기서 '영원'이란 영감의 원천을 두 글자로 줄인 것이고, 뭇 수완 없는 예술가들의 명목상 통장 잔고이며, 그 대가로 말미암은 창작의 수명이다. (13쪽)

이 책에는 도스토옙스키, 쳇 베이커, 미켈란 젤로, 윤동주, 스탠리 큐브릭, 스콧 피츠제럴드, 마일스 데이비스, 서머싯 몸, 오타니 쇼페이, 카라바조, 렘브란트, 클로드 모네, 어니스트 헤밍웨이, 빌 에반스, 마틴 스콜세지, 무라카미 하루키, 데이브 샤펠, 제인 오스틴, 토리야마 아키라, 프리다 칼로, 에밀 졸라, 존 레논, 이창호 등 총 23인이 소개된다.




이 책은 특이하다. 주변에 그런 지인 하나쯤 떠오를 것이다. 술 마신 것도 아니고 물만 마시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를 해나가는 그런 사람 말이다. 추임새처럼 들어가는 비속어 단어가 영 걸리기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말 다 빼고 바른말만 예의 갖추고 다소곳하게 한다면 그건 이미 그 사람이 아닌 듯한 느낌말이다. 그런 느낌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비속어에 철컥 걸린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이 책을 통해 모르던 사실을 얼마나 많이 알게 되었냐, 핵심을 잘 짚어봐라, 등등 그런 생각이 드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상하게도 꼰대가 되어버리는 느낌도 든다.

저자는 눈치 안 보고 거침없이 자신의 속 이야기를 펼쳐가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도 대단한데 그것을 글로 남기다니 엄청 당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는 그 말투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 책이다. 그리고 그렇게 읽다 보니 진솔하게 속을 확 털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들이 얼마나 남다르게 특출난 인물이었는지 올려다보기보다, 엇비슷한 눈높이에서 인사하는 것이 즐거운 일임을, 나는 배웠다. 그제나 이제나 험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다. 그들과 나는 함께 교무실에 끌려가는 느낌으로, 담뱃값이 아까워 꽁초를 찾는 기분으로,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가 하루 만에 관둬버린 자괴감 같은 것으로도 연결될 수 있었다. 내 이런 시도가 우리 세대에게 자그마한 위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같이 안 쓰니만 못한 문장은 접어두기로 하고, 제각기 염병할 삶으로 돌아갈 때는 책 한 권 결제에 아까워하지 않는 쿨한 독자가 되어 있기를 희망해본다. (310쪽)

말이 짧다? 왜 그런 단어를 쓰지? 왜 이렇게 비아냥거리지? 등등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이 책에 실린 '예술과 영감 사이의 23가지 단상'에 주목해보자. 이런 이야기를 당당하게 풀어놓을 작가가 흔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처음엔 '뭐지?'라는 느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하나하나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며 흥미롭게 끝까지 읽어나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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