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1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이유를 이야기하기도 좀 민망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읽을까 말까 고민하기를 잠깐, 곧 절판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때로는 이런 단순한 이유로 책을 읽더라도 괜찮다. 어떻게든 책과 만나는 건 엄청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소설을 일상에 끌어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안 그래도 바쁜 일상에 소설을 들이는 것은 큰맘 먹고 해야 할 일인 데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을 만나면 그 후유증이 꽤 오래가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빠져나오기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내가 소설을 읽을 때에는 기대 없이 우연히 툭 펼쳐들었다가 마음에 훅 치고 들어오는 경우에 뿌듯하다. 이 책도 다행히 그랬다.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도박 이야기인가 하여 관심이 덜 갔는데, 막상 책장을 펼쳐 드니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통해 잘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인 '자이니치'에 대해 진지하게 살펴보고 생각에 잠긴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장장 30년의 세월이 걸린 작가의 혼이 담긴 작품 《파친코》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나라 잃은 유랑의 후예로서 뼈아픈 학대를 무릅쓰고 피어난 처절한 망국민의 애처로운 역사 《파친코》

(책 뒤표지 중에서)



이 책의 저자는 이민진. 한국계 1.5세대로서 제2의 제인 오스틴이라는 명성이 자자한 이민진은 유년 시절 가족 이민으로 뉴욕에 정착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원산, 어머니는 부산 출신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화장품회사 영업사원으로 지내다가 새로운 삶을 찾아 1970년대 중반에 이민을 결행했다. '쥐가 나오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던' 가난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이민진은 일요일도 없이 일하는 부모님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런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녀는 기업변호사로 일하며 한인 이민 사회의 성공 모델로 성장했다.

하지만 B형간염으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잘나가던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고교 시절부터 재능을 보였던 글 쓰는 일을 시작했다.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이민진의 소설적 뿌리는 이민이라는 소재를 자양분으로 뻗어나간다. 막연한 호기심만 품고 있던 재일교포에 대해 직접 알게 된 계기는 일본계 미국인 남편을 만난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도쿄의 금융회사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그녀는 일본에서 4년간 생활하게 되었고, 이 기간 동안 다양한 취재와 연구를 통해 소설 《파친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책날개 발췌)



고향은 이름이자 강력한 말이다.

마법사가 외우는, 혹은 영혼이 응답하는

가장 강력한 주문보다 더 강력한 말이다.

-찰스 디킨스

가장 먼저 고향 이야기가 나온다. 1910년부터 1949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산의 작은 섬, 영도라는 공간과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어떨지 궁금해하면서 읽어나간다.

이 책의 책날개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이 부분을 읽고 보면 본격적으로 작품의 내용에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소설 《파친코》는 내국인이면서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처절한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30년이 걸린, 작가 이민진의 혼이 담긴 이 대작은 그녀가 1989년 예일대 재학 시절 참석한 강의에서 느낀 분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다 자살한 어느 일본 중학생의 이야기는 선천적인 이유로 상처 받아야 하는 이들에 대한 슬픔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분노와 슬픔에서 탄생한 소설 《파친코》는 단순한 도박 이야기가 아니라, 멸시받는 한 가족이 이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투쟁적인 삶의 기록이며 유배와 차별에 관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부산 영도의 기형아 훈이, 그의 딸 선자, 선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낳은 아들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핏줄의 역사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일본에서 가혹한 차별과 가난을 견디면서 이방인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도전에 맞서 살아간다. 이들은 정체성에 관한 의문과 끊임없이 마주하면서 필사적인 투쟁과 힘겹게 얻은 승리를 통해 깊은 뿌리로 연결되어 하나가 된다. (책날개 중에서)



역사가 우릴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11쪽)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만만치 않은 현실이라 생각되며, 어쩌면 생각보다 더 처절하리라 여기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그 시절의 삶을 눈앞에서 보듯이 읽어나간다. 굶주림과 차별에 맞서는 이들의 모습에서 안쓰럽고 먹먹해서 눈물을 글썽이며 읽어나갔다. 그들의 처절한 삶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소설은 나를 그 상황에 몰아넣고, 나라면 어떤 삶을 살아낼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적응해서 살자. 이만큼 간단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67쪽)

얼마나 현장감 있게 표현을 했는지 내가 그 시대를 살고 나온 것 같았다.



이 책은 생각보다 술술 잘 읽힌다. 몰입도가 뛰어나다. 두 권짜리 두꺼운 소설이라고 해도 읽는 시간은 생각보다 적게 들 것이라고 계산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몰입하면서 이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일단 이 책은 소재 자체가 꼭 짚어보고 들여다볼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새로이 알아가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2권까지 한달음에 달리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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