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뇌과학 -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가
리사 제노바 지음, 윤승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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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는 데에는 이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스틸 앨리스』의 저자,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가 들려주는

불완전하지만 경이로운 인간 기억의 비밀 (책 띠지 중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자신의 할머니를 모티프로 쓴 첫 소설 『스틸 앨리스』는 전 세계 37개 언어로 번역되며 260만 부가 판매되었고, 2014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스틸 앨리스』 (개정 전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를 읽기 전까지 나는 그저 '치매' 하면 주변인의 고통만을 떠올렸다. 그 책이 나에게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으니, '리사 제노바'라는 이름만으로도 눈을 반짝이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이 기억하고 망각할 때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탐구한 제노바의 첫 논픽션이라고 한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기억의 뇌과학』을 펼쳐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리사 제노바. 과학자의 눈과 시인의 귀를 가진 신경과학자, 그리고 소설가다. 알츠하이머병, 외상성 뇌손상, 자폐증, 헌팅턴병 등 신경질환에 대한 과학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소설로 풀어내며 현대소설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소설계의 올리버 색스'이자 '뇌과학계의 마이클 크라이튼'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책날개 중에서)

기억은 결국 우리가 기억하고 망각하는 것들의 총합이고 기억과 망각 모두 어떤 면에서는 과학인 동시에 예술이다. 오늘 경험하고 배운 것을 내일이면 잊을 것인가, 세세한 추억과 지식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간직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우리의 기억은 기적이라 할 만큼 강력한 동시에 허점투성이인 채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21쪽)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들어가는 말 '기적이라 할 만큼 강력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허술한'을 시작으로, 1부 '기억의 과학', 2부 '망각의 예술', 3부 '기억의 숲을 가꾸는 법'으로 이어지며, 부록 '기억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들', 더 읽을거리, 감사의 말, 찾아보기 등으로 마무리된다.

3부의 내용은 총 18장으로 나뉘는데,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당신이 주차 위치를 잊어버린 이유, 우리의 기억은 틀렸다, 혀끝에 기억이 맴돌 때, 기억해야 한다는 걸 기억하는 법,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기억이 사라질까, 망각이 우리를 살게 한다, 잠이 부족할 때 벌어지는 일, 알츠하이머병에 저항하는 뇌, 소중하게 그러나 결코 무겁지 않게 등의 글이 담겨 있다.



들어가는 글부터 몰입해서 읽는다.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뇌에 대한 탐험에 동참하며 눈을 반짝인다.

우리 뇌는 애초에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세세한 경험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뇌가 불완전한 것은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출고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라도 기억에 결함이 있게 마련이다. 파이를 소수점 아래 10만 자리 넘게 외워서 유명해진 사람도 아내의 생일을 잊거나 지금 자신이 거실에 뭘 하러 나와 있는지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늘 경험한 일 대부분을 내일이면 잊는다. 결국 인생 대부분을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다. (14쪽)

시선을 이끌어서 글자 하나하나 놓치지 않도록 몰입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리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그때 또 읽으면 되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푹 빠져들어 읽게 되는 멋진 책.



왜 그 방에 들어갔는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게 되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이 멍한 상태는 일생일대의 위기도

알츠하이머병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다시 뇌를 움직이면 해결되는 일이다. (205쪽)

이 책을 읽으며 기억의 수많은 허점에 대해 느긋해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며칠 전에도 무엇을 찾으러 갔다가 '내가 왜 여기 왔지?'라며 한참 멍하게 서있었고,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못 찾을까 봐 걱정하기도 했으며, 쌀을 사겠다며 마트에 가서 쌀만 빼놓고 다른 것을 사 왔던 일들에 더욱 관대해진다.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주차 장소, 지인의 이름, 하려던 말 등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가슴이 철렁했던 경험이 있냐고 말이다. 아직 걱정하기는 이르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단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얼마나 다행인가.

이 책에서 저자는 되도록 자세하게 설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풍부한 예시를 들면서, 때로는 자신의 경험도 들어가며 이야기해 주는데,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해 보았을 문제이면서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접근해서 풀어나가니 안심하면서 읽게 된다.



내일 거대 제약회사가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가능성을 현저히 낮출 신약을 내놓는다면 사겠는가? 얼마까지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가? 그런데 사실 그런 약이 이미 있다.

잠이라는 약이다. (224쪽)

잠에 대한 한마디도 남다르다. 시선을 확 잡아끄는 재주가 있다. 여기에 더해 이야기해 보자면, 저자는 '우리는 잠을 박탈당하고도 적게 자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곱 시간도 채 자지 않는 생활습관을 열정으로 포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허세다.(232쪽)'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일곱 시간에서 아홉 시간을 푹 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 전두피질 신경세포가 무기력해져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새로운 기억들을 부호화하는 능력이 저해된다.

· 전날 배우고 경험한 것을 분명하고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 전날 레슨을 받고 18홀을 다 돌았어도 골프 스윙이 나아지지 않는다.

· 기억용량이 일찍 한계에 도달해 학습량을 채우지 못할 수 있다.

·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233쪽)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가 기억하고 망각할 때 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당신은 학습하고 기억하게 된다. 물론 그중 대부분은 머지않아 망각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상과 경험들을 다시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서. 하지만 이것만은 잘 기억하시길 바란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기억에 대해 궁금해질 때마다 당신은 이 책을 수시로 펼쳐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_정재승 (뇌과학자, 『과학콘서트』, 『열두 발자국』의 저자)

저자가 알게 된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 배운 세 가지 가르침이 인상적이다. 첫째,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내일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다. 삶은 계속된다. 둘째, 감정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 5분 전에 들은 말을 잊어버리고 지금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잊을지라도 그 사람으로 인해 어떤 감정을 느꼈었는지는 기억할 것이다. 셋째, 기억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다.

소중하게, 그렇지만 결코 무겁지 않게. 기억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다. (249쪽)

기억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읊조려본다. 저자의 할머니는 알츠하이머병으로 돌아가시던 순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생애 마지막 4년간 자신만을 돌보던 딸 메리를 자신이 온정을 베풀어 집에 들인 노숙자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병과 싸우던 마지막 수년 동안 할머니는 너무 힘든 기억만 남겼지만, 돌아가시는 그날도 할머니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셨다는 것이다.

소중한 것을 알지만 때때로 잊고, 무겁지 않게 생각하고 싶지만 가끔은 그 무게에 짓눌리는, 그런 경험을 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삶이 그런 것이니까.

이 책에 따르면 기억이란 마치 우리가 숲을 가꾸듯이 의미 있게 여긴 것을 선택하고 강화하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기억이 왜곡되고 망각될 때 인간은 오히려 개성적이고 창의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며 기억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인간 기억의 작동원리를 정말 매혹적으로 들려주어 눈을 뗄 수 없는 책이다.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중에 잊지 못할 책으로 기억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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