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살아요
무레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블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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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확실한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카모메 식당』을 빼놓을 수 없겠다. 그 영화를 보고는 매혹되어서 몇 번이나 더 보았던지 모른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카모메 식당』의 저자 '무레 요코'라는 단어만 나오면 무조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손부터 뻗곤 한다.

이 책도 그래서 읽어보게 되었다. 『카모메 식당』의 저자 '무레 요코'의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행복 이야기'라고 하여 관심이 생겼다.

그러고 보면 나도 거창한 무언가보다 소소한 일상의 작은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다른 이에게는 별것 아닐지라도 나에게는 '이것만 있으면 행복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 삶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책 『이걸로 살아요』를 읽으며 무레 요코의 이야기에서 그런 것들을 발견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무레 요코. 영화의 원작인 『카모메 식당』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으며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을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표현해 '요코 중독' 현상을 일으키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의 대표 작가이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은 총 21장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스타우브, 뚝배기, 만년필, 지우개, 다카시마치지미 파자마, 삼베 시트, 신문지 쓰레기봉투, 하이네리, 청소 솔, 오팔 털실, 에네탄 베개, 편지지 세트, 엽서, 콩접시, 대접시, 문짝 달린 목제 책장, 벨레다, 보디 시트, 삼베 침대 패드, 삼베 이불, 배저, 국화 모기향, 온습도계, 습윤 밴드, 스카프, 손뜨개 목도리, 손목시계, 지요가미, 포장지, 빗자루와 먼지떨이, 불상, 성모 마리아상, 고양이상, 꽃병 등에 관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사실 차례에 있는 목록을 보고서는 '아, 취향은 나와 좀 다르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르신 취향이랄까. 하긴 얼마 전에 읽은 전작 『예고도 없이 나이를 먹었습니다』를 보며 '라떼는 말이야' 느낌을 좀 받기도 했으니, 충격적이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약간 거리감은 있었다.

그래도 나에게 한번 『카모메 식당』의 저자 '무레 요코'라고 인식되어 있다는 건 그 존재 자체로도 늘 궁금하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니, 이 책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소소하고 잔잔하게 나를 감싸줄지 기대하며 읽어나갔다.

역시 가장 먼저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은 필기류에 관한 이야기다.

연필은 오래전부터 미쓰비시의 하이유니를 쓰고 있다. 유니라는 제품도 있지만 몸통 끝에 금색 테가 둘러쳐진 하이유니가 나한테는 필기감이 좋다. 심은 부드러운 것을 좋아해서 4B와 6B를 한 다스씩 사서 쓴다. 돌아가신 지 제법 된 현대미술가 겸 작가 아카세가와 겐페이 씨가 거의 다 써서 1센티 정도로 짧아진 연필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 사진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연필 홀더를 이용해서 되도록 오래 쓰고는 있지만 그렇게나 짧아질 때까지 쓰진 못한다. (25쪽)

일상의 소소한 물건을 대하면서도 취향도 확실하고 이야기도 이렇게 신나게 풀어내니,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읽어나간다. 어쩌면 중년 세대들은 잊고 있던 아날로그 감성까지 되살리며 '맞아, 맞아' 하면서 읽어나갈지도 모르겠다. 자신만의 똑부러진 취향이 좋다. 그 취향 존중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만년필로 편지지 디자인에 따라 세로쓰기 또는 가로쓰기로 써보면,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지만 세로쓰기에는 일본 제품인 파일럿과 플래티넘, 가로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펠리칸이 쓰기 편하다. (28쪽)



그런데 읽어나가며 점점 솔깃해서 검색까지 해가며 시선 집중한다. 땀 나는 계절에 입고 잤더니 다른 파자마는 못 입게 됐다며 '다카시마치지미 파자마'를 사람들에게 권하는 이야기를 보며, 그 제품이 바로 다음에 나온다면 주문 버튼을 눌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기도 했다.

취향이 독특하고 강한 것이 의외로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니, 이건 순전히 무레 요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서인가 보다. 전에는 발우만 있으면 모든 식기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서 지금은 밥그릇도 국그릇도 감촉이 똑같은 게 용납이 안 된다고 하니, 취향이 정말 확실하다. 절대 '아무거나' 같은 거 생각지도 않을 듯한 모습에 우유부단한 나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난 사실 물건에 대한 취향이 별로 없다. 아무거나 있으면 쓰는 타입이라 당연히들 알고 있는 물건에 대한 지식도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물건들에 어찌나 솔깃하며 읽어나갔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들었다.

특히 요즘에는 누군가의 사용기를 보고 구입했다가 대실패를 경험한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냥 아는 언니가 '나 이거 써봤는데 좋더라'라고 콕 집어서 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물건 고민하는 데에 시간 보내지 말고 그냥 그거 사용하고 싶은 거다.

그 '아는 언니'가 무레 요코라는 생각으로 읽어나갔다. 특히 앞뒤 안 맞는 취향까지도 인간적이어서 내 스타일이다. 플라스틱 제품 최대한 안 쓰려고 하면서도 에네탄 베개를 사버리고, 계절별로 침구를 세세하게 달리하는 모습에도 그냥 웃음이 나오며 요코 스타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개성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이왕 사용하는 물건들에 설레는 기쁨을 느끼며 나만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싶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무레 요코가 좋아한다는 물건들 비슷한 것이라도 검색해보기도 하고, 나의 취향도 더듬어보고, 내 주변의 소소한 물건들에서 의미도 찾아보았으니, 알차게 오밀조밀 읽어나간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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