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아지는 책
워리 라인스 지음, 최지원 옮김 / 허밍버드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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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에게도 기분이 좋아지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그러는 데에는 어느 여름날의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조금만 걸으면 땀이 삐질삐질 흘러서 불쾌하던 때였다. 그날 나는 한 정거장 거리를 걸어가야 했는데, 걸으면서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이 나를 휘어잡아 괴로웠다. 이게 뭔가,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도대체 신은 있는 건가 등등.

하지만 그 생각들은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날씨와 환경 등 물리적인 영향이 마음까지도 지배한다는 것을 단단히 느낀 날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내가 어떤 것을 먹고 무엇을 하면 기분이 나아지는지 차곡차곡 생각을 모아두고 있다.

사이토 다카시는 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하다고 했다. 나는 떡볶이를 먹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그렇게 하면 행복해진다는 절대적인 행복론을 구축해 놓으면 힘들 때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 기분이 안 좋은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면, 일단 멈춤. 어쩌면 그 생각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 멈추고, 환경을 바꾼다. 날씨 때문일 수도 있다. 습기가 많고 후덥지근하거나 너무 춥거나, 그런 것 모두 위험하다. 그리고 배가 고파도 안 좋으니 맛있는 것 먹고……. 나에게는 떡볶이와 크림수프가 힐링푸드다. 떡볶이로 스트레스를 확 날려주고 크림 수프로 보드랍게 감싸준다.

그리고 오늘 하나 더 추가한다. 바로 《기분 좋아지는 책》이다. 이 책은 일단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기대감을 끌어올려 주고 기분을 좋게 해준다. 그리고 내 안의 거대한 걱정과 함께하는 솔직하고 기발한 이야기라고 하니, 이 책을 보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도 좋겠다.



이 책의 저자는 워리 라인스. 유럽과 미국, 호주를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성별, 인종, 나이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 심플한 라인과 채색으로 그려낸 통찰력 있는 그림으로 80만 팔로워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린 책으로는 김은주 작가와 콜라보한 《나라는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가 있다. (책날개 발췌)

늘 함께하는 걱정과 불안

불쑥불쑥 찾아오는 절망과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소중한 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희망이 있으니까 (책 뒤표지 중에서)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다. 파란 인간 '걱정이'가 나타나서 온갖 딴지를 걸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내 안에 '희망이'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걱정이'가 방방 뜨는 나를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다잡아주기도 하니,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두고 여러 번 꺼내 보아도 좋겠다. 펼쳐들 때마다 와닿는 그림이 다르다. 심플한 라인으로 쓱쓱 그려낸 단순함이 꾸밈없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이 책을 펼쳐들고 스르륵 넘기다 보면 문득 내 마음이 보이거나 내 감정을 알아주고 어루만져 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내 맘속의 나를 보는 듯해서 때로는 뜨끔하고, 문득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도 든다. 다양한 감정이 샘솟는다.



이렇게 단순한 라인으로 대사도 별로 없으면서도 마음에 울림을 주는 그림을 그려내다니! 정말 신기하다. 그리고 가끔 파란 인간 '걱정이'가 나타나 초를 쳐주는데, 그래서 손발이 오그라들지만은 않으며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글과 그림도 복잡하면 읽을 여력이 없다. 하지만 제목 자체에서 오는 기대감과 함께 단순한 라인과 색상으로 눈앞의 복잡함을 가라앉혀주면, 사는 거 뭐 별건가, 인생 뭐 있나, 생각되면서, 걱정의 크기가 확 줄어들면서 몽글몽글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걱정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걱정을 잠재울 방법을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이 워리 라인스의 유쾌한 응원으로 기분을 좋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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