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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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탁환 에세이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이다. 말 그대로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일기라는 형식으로 펼쳐 보여주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박하고 재미있는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 (책표지 중에서)

'제철 마음을 먹을 것'

이 말이 예뻐서 자꾸 읊조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껏 나는 제철 채소와 과일조차 챙겨먹지 않으며 살고 있었는데, 특히 제철 마음을 먹는 것은 더더욱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봄이 오니 먹을 것이 지천이다. 민들레에 씀바귀까지 캐서 그냥 먹었다. 쓰지 않고 달다. 봄·여름·가을·겨울 철마다 먹거리를 알고 찾듯, 그해에 그 철에 그날에 맞는 마음을 살피는 일이 귀하다. 세상의 기미와 함께 내가 끌리는 대상에게 어린아이처럼 다가가는 마음.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마음. (7쪽)

이 글은 본문을 읽어나가다가 11월 3일에 '제철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또다시 만났다.

11월의 메타세쿼이아가 내게 묻는 듯하다. 마음의 빛깔이 달라졌냐고.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 (346쪽)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마음을 휘적휘적 휘저어서 기대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멋진 마음, 아름다운 마음, 예쁜 마음… 또 무엇으로 표현할까. 수식어에 한계를 느끼지만 이런 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



이 책의 저자는 김탁환. 군항 진해에서 태어났다. 마산과 창원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시를 습작하다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신화와 전설과 민담 그리고 고전소설의 세계에 푹 빠져 지냈다. 진해로 돌아와 해군사관학교에서 해양문학을 가르치며, 첫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와 첫 역사소설 『불멸의 이순신』을 썼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역사추리소설 '백탑파 시리즈'를 시작했고, 『나, 황진이』 『리심』 등을 완성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끝으로, 2009년 여름 대학을 떠났다. 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쓰며 판소리에 매혹되었고, 소리꾼 최용석와 '창작집단 싸목싸목'을 결성하였다. 지금까지 30편의 장편소설과 3권의 단편집과 3편의 장편동화를 냈으며, 다수의 에세이와 논픽션도 출간했다. (책날개 중에서)



소설가 김탁환은 말한다. 삶이 바뀌지 않고는 글도 바뀌지 않는다며, 익숙한 글감을 쓰면서 늙어가지 말고, 좋아하며 알고 싶은 세계로 삶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2021년 1월 1일, 집필실 '달문의 마음'을 곡성군 곡성읍 섬진강로 2584로 옮긴 뒤 더 많은 걸 상상하게 되었다. 상상을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 내 업이니, 그것은 그것대로 해나가겠지만, 상상을 또 다른 것으로 바꾸는 일도 섬진강 들녘에서 계속 시도할까 싶다. 장르를 따진다면 모험담이겠다. (405쪽)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종부터 탈곡까지 논농사를 지었고, 텃밭과 정원을 가꾸며 지냈다. 초보 농사꾼이자 초보 책방지기, 초보 마을소설가로 보낸 시간의 단상을 일기를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 살지만 소설가 김탁환처럼 이렇게 농사도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도시인의 로망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쩌면 소설가 김탁환이기에 풀어낼 수 있는 글이기도 하고, 그의 글을 통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제야 깨닫는 부분도 있었다. 이 책에는 그의 글이기에 느껴지는 특별함이 있다.

정원에 꽃 심은 이야기나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 등등 읽어나가다가 쿡쿡 웃기도 하고, 그 장면을 상상해보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까지 몰입해서 읽어나가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일단 펼쳐들어 읽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고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을 그리듯이 떠올랐다.

읽어나가다 보면 문득 마음을 탁 치고 들어오는 글이 있다. 그런 글 중에 '물살이'라는 글도 인상적이었다.

하늘을 오가는 새들을 보며 '새고기가 난다'고 적는 이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강이나 바다를 들여다보고 '물고기가 헤엄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물고기를 '물살이'로 바꿔 부르자고 내게 처음 제안한 이는 김한민 작가다. 그 제안은 나를 엉뚱한 상상으로 이끌었다. 인류가 육상에 살지 않고 강이든 바다든 수중생활을 한다면, '물고기'란 이름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대신 육상 생물들을 통칭하여 '육지고기' 혹은 '땅고기'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수중생물들은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단체행동과 함께 사생활도 즐기지만, 땅고기들은 수십 마리의 들소든 수백 마리의 갈매기든 외모도 똑같고 개성 따윈 있지도 않다면서! 용궁에 모여 이런 주장을 펼치는 장면을 판소리로 만들어볼까. (171쪽)



초보 농부이자 초보 마을소설가 김탁환이

글과 생명이 태어나는 곳, 섬진강 옆 집필실에서

느리지만 성실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하루하루 (책 뒤표지 중에서)

이 책은 끝까지 알뜰하게 읽었다. 김탁환 소설가가 생각하는 꿈과 미래지향적인 그림이 성실하고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특히 자연 생태계를 지키려고 하는 그 마음이 가슴을 울린다.

특히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볼 때는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궁금해서 더 보고 싶은 것과, 다른 하나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남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책은 궁금해서 더 보고 싶고,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책이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도 무척이나 궁금하다. 이렇게 궁금하게 만드는 것도 소설가 김탁환의 필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번에 들려줄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다음 이야기도 또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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