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미술관 - 그림에 삶을 묻다
김건우 지음 / 어바웃어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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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미술 관련 서적이 눈에 띄면 읽고 있다. 명화는 내 느낌대로 스스로 감상하기보다는 누군가가 짚어줘야 비로소 '아, 그런 의미가 있구나' 하면서 발견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나는 미술에 소질이 없고, 명화 감상도 글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보면서 '이건 나를 위한 책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으니,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반갑고 설렜다.

그는 그림과 서먹한 사이일수록 화가 중심의 감상을 권한다. 작품 위주로 즐기다 보면 꿰지 않은 구슬처럼 파편화된 지식이 방향을 잃고 방황하기 십상이다. 화가의 삶을 중심축으로 두고 그림과 만나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넘나들며 총체적인 시각에서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작품은 화가의 내면과 시대를 모두 투영하기 때문이다. (책날개, 작가 소개 중에서)

그러고 보면 작품 자체보다 화가의 삶과 작품을 함께 제시해주면 더욱 집중해서 바라보곤 했다. 애써 작품 위주로 감상하려고 하지는 말고, 내 관심이 끌리는 대로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해 더욱 호기심이 생기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면서 『인생미술관』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김건우. 미술, 음악, 영화 등 문화예술 관련 콘텐츠를 기획하여 책으로 만드는 에디터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근·현대 서양미술에 천착해 다양한 도서를 기획해왔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이 소개하는 스물두 명의 화가 이야기는 그들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고흐는 1890년 7월 29일 오베르에서 열린 장례식, 다비드는 망명지에서 마차에 치여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 순간, 세잔은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가 폭우를 맞고 의식을 잃고 쓰러질 때를 첫 장면으로 인생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낸다.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화가들이니 역순으로 삶을 반추하는데 별 무리가 없고, 새로운 포맷으로 읽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 인물에 대해 과거와 현재, 개인과 사회를 넘나들며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0여 점의 그림 속에서 여러분이 흔들리는 삶의 갈피를 잡아줄 '인생 그림' 하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7쪽)

이 책은 총 4 챕터로 구성된다. 머리말 '가장 보통의 삶이 그림 안에 있다!'를 시작으로, 챕터 1 '삶을 짓누르는 중력에 맞서', 챕터 2 '내 캔버스의 뮤즈는 '나'', 챕터 3 '어둠이 빛을 정의한다', 챕터 4 '달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빈센트 반 고흐, 에드가 드가, 폴 고갱, 장 프랑수아 밀레, 틴토레토, 알브레히트 뒤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외젠 들라크루아, 귀스타브 쿠르베, 폴 세잔, 에드바르 뭉크, 렘브란트 반 레인, 오노레 도미에, 에두아르 마네, 프란시스코 고야, 한스 홀바인 2세, 디에고 벨라스케스, 자크 루이 다비드,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니콜라 푸생, 라파엘로 산치오, 피터 파울 루벤스 등 스물두 명의 화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화가의 인생을 풀어내기 위해, '부고(訃告)'라는 조금은 낯선 시도를 해보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나 영화의 첫 장면에서 큰 사건이나 누군가의 죽음으로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은 후에 몇 년 전 이야기로 차분하게 시작하는 경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의 인생을 태어난 것부터가 아니라 죽음부터 짚으며 시작하는 구성이 지금껏 본 적 없는 색다른 시도여서 더욱 몰입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 스토리가 있으니 물론 책 속 작품에도 더욱 시선이 가며 흥미를 유발했다.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감흥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순간이다.



이 책의 구성도 내용도 나를 뒤흔드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그것은 아마 완벽한 듯한 완성작인 미술 작품만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화가에게서 나온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에 그러한 것이리라.

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그린 화가 역시 우리처럼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이의 인간이다. 화가를 위인이 아닌 실패하고, 욕망하고,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고, 타협하고, 고뇌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볼 때, 미술관에 걸린 그림과 평범한 우리 사이에 접점이 생긴다. 그림이 현실의 삶과 연결되면, 일방적인 감상의 차원을 넘어 그림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그림과 삶을 연결시켜주고 평범한 우리와 접점이 생기도록 도와주고 있다. 같은 작품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이다. 이 책이 그림을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두고두고 꺼내들고 싶은 책이다. 때로는 그림만, 때로는 읽은 지 오래되어 희미해진 내용을 다시 상기하며 한 인간이었던 화가를 기억하고자 한다.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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