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봄 - 정신과 의사의 일상 사유 심리학
김건종 지음 / 포르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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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바라;봄』이다. '바란다. 본다. 사랑한다'라는 말과 함께, '정신과 의사의 일상 사유 심리학'이라는 설명이 이어지면 '아!' 하면서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 든다.

십 년째 작은 소도시에서 소소한 일상을 살고 있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일하고, 집에 와서 쉬고 논다. 하지만 이 심심하고 뻔한 생활 속에서 가끔 내밀한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잠시 이상하게 낯선 온도와 색채로 다가오는 일상을 문장으로 붙잡아보곤 한다. 그 문장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욕망이나 인식이 담겨있다. 바라는 것들이 생겨나거나 스러지고, 보이는 것들이 드러나거나 사라진다. 그렇게 나는 바라고, 본다. 바라본다. (4쪽)

제목부터 남다른 느낌이어서 어떤 내용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바라;봄』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김건종.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수련받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었다. 고향인 남쪽 바닷가 마을에 내려와 작은 의원을 열고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언젠가부터 문장들을 수집해 왔다. 내 마음에서 생겨난 문장들이 있고, 책에서 읽은 문장도 있다. 진료실에서 듣거나 말한 문장이 있고, 아내와 나눈 문장도 있다. 두 아들이 아빠에게 이야기해준 문장이 있고 꿈에서 떠오른 문장도 있다. 마음의 움직임이 문장을 만들고, 어떨 땐 문장이 마음을 움직인다. 그 문장들이 흐려지고 흘러가고 흩어지는 게 어느 날부터 아쉬워 구석에서 조금씩 모아왔고, 찬찬히 다듬어 하나로 묶은 것이 이 책이다. (5쪽)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서문 '사소한 것의 깊이'를 시작으로, 1장 '살펴 봄', 2장 '이해해 봄', 3장 '사랑해 봄', 4장 '알아 봄', 5장 '바라 봄'으로 나뉜다. 1장은 ㄱ-ㄴ, 2장은 ㄷ-ㅁ, 3장은 ㅂ-ㅅ, 4장은 '-ㅇ, 5장은 ㅈ-ㅎ으로 구성된다.



그동안 의사가 쓴 에세이는 질환에 대한 것이나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당연한 듯 담겨 있어서, 이 책도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이야기나 의사의 소견을 들려주리라 당연하게 짐작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것부터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무언가 당연한 듯 평범한 것 말고, 거기에서 발상의 전환으로 한 단계 비틀어서 전해줄 때 신선함을 느끼나 보다.

이 책은 사전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냥 스르륵 읽다가도 '어, 어, 어'하면서 급브레이크를 걸고 앞으로 다시 가서 속도를 줄이고 음미하게 된다. 단어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도 훅 들어온다. 이건 급발진하듯 읽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야금야금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 이 책을 펼쳐들면 그렇게 된다.



문장 수집가 정신과 의사선생님의 단어집이다. 마음 사전이라고도 한다. 이름을 무어라 규정하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단어가 그냥 사전 상의 단어일지라도 저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탄생되는 것이다.

차례에 보면 단어들은 평범하고 사소하기까지 하다. 가로수, 가장자리, 가해자, 감각, 거리, 겸손, 고립 등등으로 진행되며 커피, 코골이, 타조, 폭류, 표면, 프랙털, 피어나다, 피칭, 환상, 흉내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단어에 대한 글들이 통통 튀어나와 살아 숨 쉰다. 활어다.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각종 물고기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며 눈앞에 펼쳐진다.

단어마다 길지 않으면서 짤막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때로는 지적이고, 때로는 인간적이고, 때로는 큭큭 웃기도 하며 읽어나갈 수 있으니, 정신과 의사의 단어집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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