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한강은 1970년에 태어나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외 네 편이 실리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는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이 있다. 그는 침묵과 암흑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렸던 최초의 언어에 가닿고자 한다. 뜨겁고도 차가운 한강의 첫 시집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언어-영혼'의 소생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고통의 시금석인 셈이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된다. 시인의 말을 시작으로, 1부 '새벽에 들은 노래', 2부 '해부극장', 3부 '저녁 잎사귀', 4부 '거울 저편의 겨울', 5부 '캄캄한 불빛의 집'으로 이어진다. 해설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 조연정'으로 마무리된다.
어느 순간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에는 그냥 무덤덤할 수도 있겠다. 정말 평범한 일상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럴 때에는 더 읽으려고 하지 말고 조용히 덮어서 다시 책장에 꽂아두어야 한다. 분명 그 시는 마음에 와닿을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그맣게 와닿는 것이 아니라,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담긴 시도 마찬가지였다. 다소 평범한 언어로 되어 있지만, 문득 마음을 쿵 울리던 순간이 있었다. 시를 읽던 순간이 아니라, 밥을 먹으려던 어느 순간. 시인이 짚어주어서 그제야 알게 되었던 그 순간 그 마음이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