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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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글에 매료된 것은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였다. 그 당시 상황을 너무도 잘 그려내어, 차마 두려워져서 읽으면서 손에서 놓기를 여러 번, 휘청거리며 그 글을 읽어냈다. 누구든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독자의 상황에 따라 마음 단단히 먹고 힘을 내어 읽을 수 있을 때 잘 잡아내어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그다음에 읽은 것은 『채식주의자』다.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이라는 점에서 읽어본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은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이다. 물론 감상은 훨씬 전부터 책장에 들여놓고 틈틈이 꺼내들기를 반복하며 했는데, 서평은 이번 기회에 작성하게 되었다.



시인 한강은 1970년에 태어나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외 네 편이 실리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는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이 있다. 그는 침묵과 암흑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렸던 최초의 언어에 가닿고자 한다. 뜨겁고도 차가운 한강의 첫 시집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언어-영혼'의 소생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고통의 시금석인 셈이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된다. 시인의 말을 시작으로, 1부 '새벽에 들은 노래', 2부 '해부극장', 3부 '저녁 잎사귀', 4부 '거울 저편의 겨울', 5부 '캄캄한 불빛의 집'으로 이어진다. 해설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 조연정'으로 마무리된다.

어느 순간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에는 그냥 무덤덤할 수도 있겠다. 정말 평범한 일상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럴 때에는 더 읽으려고 하지 말고 조용히 덮어서 다시 책장에 꽂아두어야 한다. 분명 그 시는 마음에 와닿을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그맣게 와닿는 것이 아니라,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담긴 시도 마찬가지였다. 다소 평범한 언어로 되어 있지만, 문득 마음을 쿵 울리던 순간이 있었다. 시를 읽던 순간이 아니라, 밥을 먹으려던 어느 순간. 시인이 짚어주어서 그제야 알게 되었던 그 순간 그 마음이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11쪽)



요즘 매일 시 감상을 하고 있는데, 시집은 정말 한 번 보아서는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없겠다.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오는 시가 제각각이다. 분명히 읽은 시인데도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한 번에 읽어치우지 말고 간직해두고 조금씩 야금야금 음미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한강의 시집도 정말 각양각색의 팔색조 매력을 펼쳐준다. '어 그렇구나', '뭐지?' 그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마음에 쿵 하고 와닿는다. 그 순간을 위해서는 소장하고 틈틈이 꺼내들어야 한다.




오늘도 이 책을 옆에 끼고 산책을 나섰다. 멀리 보이는 바다와 이 책이 서로 동맹을 한 듯 나를 흔든다. 어딘가 나설 때, 여행을 갈 때, 무거운 책보다는 시집 한 권을 챙겨들고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은 이 책이 나의 시간을 채워주었기에 그 여운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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