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한 청진기엔 장난기를 담아야 한다 - 위드 코로나 의사의 현실 극복 에세이
이낙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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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정말 되도록이면 병원 갈 일 없게 하자며 더 신경 써서 살고 있다. 그만큼 병원에 가기 두렵기도 하고, 코로나19로 인해 걱정스럽기도 해서 그렇다. 그런데 병원에 종일 있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많이 아픈 환자와 의료진은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병원이라는 공간은 정말 힘든 곳인데 위드 코로나 시대의 의사라니, 얼마나 고되고 스트레스 받을까.

이 책은 위드 코로나 의사의 현실 극복 에세이라고 하여 관심이 갔다. 진료실의 기쁨과 슬픔이 담긴 40편의 기록들이 궁금해서 이 책 『측은한 청진기엔 장난기를 담아야 한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낙원. 연세대학교 원주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와 호흡기 분과를 연마했으며, 현재 인천 나은병원의 호흡기내과 의사이자 중환자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바이러스'와 '세균'은 몸만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 밖으로 드러나는 감정, 몸과 몸이 맺는 관계들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에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몸을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책날개 발췌)

『측은한 청진기엔 장난기를 담아야 한다』는 "두 번은 못할 것" 같은 코로나 시대 의사의 현실 극복 에세이다. 때론 생사의 현장에서 오롯이 견뎌야 하는 적막감과 혼란의 감정, 시끌벅적한 환자와의 교감 속에 피어오르는 인정과 감동, 특별하지 않아 소중한 의사의 일상, 타인의 생사를 가름하기도 하는 숙명의 무게, 그럼에도 슬기롭게 자기와 타인의 삶을 지켜나가는 기술 등 마스크 밖으로, 청진기 밖으로 흘러넘친 사랑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들어가는 말 '의사는 되어가는 것입니다'를 시작으로, 1장 '의사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2장 '의사의 일상, 환자의 비일상', 3장 '논문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의사', 4장 ''위드 코로나' 의사가 되어가는 중입니다'로 이어지며, 맺음말 '나는 의사다'로 마무리된다.

이 책의 소제목을 살펴보다 보니 '의사의 일상, 환자의 비일상'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환자는 아파서 잠깐 병원에 가기도 하고 꽤 오래 있기도 하는데, 의사는 그곳이 일상적인 곳이라고 생각하니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니 현실 의사 이야기가 가슴을 후벼판다고 할까. 의사도 인간이다. 그러니 어쩌면 같은 의사 중에서도 속마음을 들킨 듯 느낄 수도 있겠고, 의사가 아닌 사람이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그런데 스트레스 많고 힘든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듯해서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설마, 이걸 다 나보고 하라는 건 아니겠지."

4년 차 선생님을 만나 오후 회진을 돌 때면 실행되지 않은 오더들이 발견되었고, 어김없이 핀잔을 들었다. 그럴 때 속으로 생각했다.

"에이, 설마, 내 몸이 하나인 걸 모를 리 없는 선배가 진심으로 혼내는 건 아닐 거야. 좀 더 분발하라는 격려일 거야." (27쪽)



일화 하나하나가,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생각이 마음을 건드리며 스며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글 잘 쓰는 의사 맞나 보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최악의 상태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나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눈물 쏙 빠지게 서러운 일이다. 그런데 의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아는 어느 환자의 딸도 "선생님이 좋아질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이러시냐?"라며 의사에게 화내면서 따졌다는 일화를 들은 적도 있다.

"야, 왜 네가 희망의 전도사냐! 워닝(warning, 환자의 상태가 악화할 것을 미리 설명하는 과정)을 해야지 왜 기대에 부풀게 하는 거야!"

치프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환자의 가족들에게 환자의 상태가 악화할 것이고 사망할 수도 있음을 설명해야 했는데, 막상 내가 가족 면담을 한 후 가족들이 체념이 아닌 회복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당시의 대화를 떠올리면 대강 이랬다.

"지금 환자 상태가 악화하고 있어서 며칠 내에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선생님. 정말입니까?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네, 지금 이대로 악화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저희는 몹시 당황스럽습니다. 지금 돌아가시면 안 돼요. 그래도 가능성이 조금은 있지 않습니까?"

가족들 몇 명은 울음을 터뜨리고,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가족 중 한 명이 희망을 붙들고 싶은 마음에 가능성이 조금은 있지 않느냐고 묻기를 반복하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음… 그럴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좋아질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조금 지켜보시지요."

가족들은 대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 잊어버리고 마지막에 내 입에서 나왔던 '가능성'이라는 '희망'의 단어를 붙들게 된다. 그러고 나서 상태가 악화해 임종 직전이 되었을 때 치프 선생님이 가족들에게 환자의 경과를 설명하자 이렇게 되물었다.

"아니, 지난번에는 좋아질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선생님, 왜 말이 바뀐 거지요?"

중환자의 가족들을 대하는 방법을 몰랐을 때 나는 가족들의 감정에 휘말리곤 했다. 그들이 바라는 작은 가능성에 마지못해 동의하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마지막 대답은 그들의 희망에 방점을 찍는 일이 되어버리곤 했다.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감정에 동조하더라도 표현해야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인데, 나는 서툴렀다. 내 기질과 성격 때문이리라. 그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혹은 내가 상처를 입을까봐 그랬을 것이다. 환자의 가족들이 슬픔과 기대의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도피성 대답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런 식의 대화는 가족들에게도 의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자의 치료 과정에도 도움이 될 리 없다. 적절한 선에서 냉정해질 줄 알아야 한다. (36~38쪽)



이 책은 일단 펼쳐들면 그냥 집중해서 읽게 된다. 궁금하고 알고 싶고, 그 이야기가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생겨서 결국 다 읽게 된다.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하니,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일화 하나하나가 완성도가 높고 심도 있게 펼쳐져서 저절로 눈길이 갔고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저자가 의사이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어서 누구보다 전문적으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소재다. 그런데다가 글을 잘 쓰는 의사가 이야기로 잘 엮어서 들려주는데 위트도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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