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 2022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최설 지음 / 마시멜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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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제목은 방학이다.

마음은 병들면 가슴만 얼어붙지만, 몸이 병들면 온 세상이 얼어붙는 긴 방학이 시작된다. (책 띠지 중에서)

그렇게 생각해보면 '방학'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다가온다. 인생에 있어서 그런 의미의 방학이라면 이 책의 제목에서 주는 무게감이 제법 묵직하게 느껴진다.

어떤 상상을 하든 이 소설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세계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 뒤표지에 있는 한 마디 말에 이 소설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했다.

"건강하면 착해지는 건 쉬운 법이야. 세상이 밝게만 보이니까. 하지만 몸이 아프면 어떤지 알아? 긴 방학이 계속되는 거야. 끝없는 답답함에 미쳐버리게 된다고." (책 뒤표지 중에서)

병원에 있어 보면 정말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서 덩그러니 떨어진 느낌이 든다. 인생의 방학이라고들 하지만, 그 방학도 끝이 보여야 쉬어줄 맛이 있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이 되면 정말 답답함에 미쳐버리게 된다는 거 맞는 말이다.

한 가지 더. 작가의 말에 보면 이 소설은 작가의 경험이 우러난 것이다.

안녕하세요. 실은 이 소설은 2009년생입니다. 당시 저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소설 속 친구처럼 듣는 약이 하나도 없어 죽기로 되어 있었기에 그냥은 죽기가 아쉬워 쓰게 된 글입니다. 조금만 더 친절하게 설명하자면,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한 3년 정도 단편만 써오던 제가 한 친절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드릴 말씀이 없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한가하게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얼른 한 권을 남겨야겠다는 조급함에 무작정 써내려간 첫 '장편'입니다. 그때의 제목은, 웃지 마세요, 《소년의 일생》 (233쪽)

그러니까 작가는 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임상시험에 참여해 신약을 먹게 되면서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절실함도 사그라들고 우여곡절 끝에 이 작품을 다시 쓴 것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병원은 실제로 있는 곳이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약은 실제로 있는 것이며,

이 이야기에 나오는 시험은 실제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 사건, 배경 등은 모두 글쓴이가 지어낸 것이다. (8쪽)



병원이라는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어두운 것만은 아니고, 그렇다고 밝을 수만은 없는 분위기다. 이 소설은 그 분위기에 맞는 현실감이 느껴진다. 병원에 오랜 시간 살아본 저자이기에 가능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읽어보면 김건수라는 주인공의 시크한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대사 하나하나가 '아, 그 상황이라면 그보다 더 심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면 양호한 거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2년은 매우 짧은 시간이란다."

"이 침대를 쓰던 형은 반년도 못 기다리고 죽었는데요?"

"그건…… 어렵구나……."

"너무 어려워하지 마세요. 어차피 수녀님이 풀어야 할 문제도 아니잖아요."

"하느님은 과로사를 해도 어차피 거기가 거기일 테니까," 나는 말을 이었다. "좀 무리를 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을 도와주면 좋을 텐데, 뭐 싫다는데 어쩌겠어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163쪽)



이 책은 주어진 시련을 겪고 어린 주인공이 어른들의 세계에 입사하는 그런 흔한 성장소설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한국 문학사에서 몇 안 되는, 참으로 흠잡을 데 없는 마키아벨리적 주체인 주인공 건수는 상당히 냉소적일 뿐, 작중에 등장하는 그 어떤 어른들보다도 '믿을 만한 화자'다. 《방학》이 재미있어지는 것은 이 점 때문이다.

_김형중 (조선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실제 병원에서 오랜 기간 지내며 죽음의 문턱까지 오간 적이 있는 경험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이건 이 사람이 아니면 표현하기 어려운 소설이구나!' 생각되었다. 간절하고 쓰리고 아프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필력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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